brunch

매거진 혼잣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정아줌마 Mar 07. 2022

휴대폰 전화번호가 다 사라진다면?

짧은 인맥이라 다행?

휴대폰의 발전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개 모양 휴대폰이 인기를 끌더니 이제 S사의 22 버전이 여러 가지 논란과 함께 등장하고 있다. (사과 폰은 넘사벽이라 신형이 나와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 와중에도 나는 구매한 지 5년째 접어든 휴대폰을 아직 사용 중이다보니 티브이 광고가 나올 때마다 빨려 들어갈 듯 광고에 홀려서 내일 당장 휴대폰을 바꿔버려야지라는 유혹에 휩싸이고 만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욕구는 하룻밤 자고 나면 사그라드는 것들이라 용케도 태어난 지 5년째를 달리고 있는 구닥다리 휴대폰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며칠 전 밤에도 새로운 휴대폰 광고에 집중하다 또 소비욕구가 발동해버리고야 말았다. 아마 아침에 광고를 봤더라면 당장 달려가서 바꿔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날 밤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한 밤이 주는 안락함이 내 소비욕구를 서서히 잊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참에 만약 휴대폰을 바꾸게 된다면 아주 새것인 상태 그대로 사용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데이터를 옮기는 일련의 과정들이 수고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모든 걸 새로 리셋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모든 데이터들을 옛 전화기에 남긴 채 서랍 속 다시는 꺼내지 못할 그 어딘가에 봉인해버리고 싶어졌다. 사진도 연락처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기대감과 동시에 문득 과연 내가 그 상태로 생활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나 익숙해진 포켓 수첩이다. 휴대폰 없이 단 하루만 살아 보라 한다면 나는 도리도리 뱅뱅 춤을 춰야 할지도.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사진이야 어차피 과거의 모습이니 오늘부터 새로 찍어 나가다 보면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지난 사진들은 따로 클라우드나 USB에 보관해두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역시 가장 문제는 전화번호인가. 


그렇게 한동안 휴대폰의 주소록을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최근 통화기록도 훑어보았다. 나는 한 달 동안 내 주소록에 저장된 사람들 중 스팸전화와 가족을 제외하고 고작 3명과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3명은 너무도 오래된 지인들이라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으니 만약 전화번호를 모두 삭제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주소록에 수 백명의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어 있음에도 결국 내가 연락을 주고받는 이는 열명이 채 안 되는 이런 편협한 인간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는 게 사뭇 놀랍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외롭다거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상황에 놓이고 나 또한 많은 것들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단 하나 내가 코로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의미 없는 만남을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원하지 않는 엄마들과의 관계가 생기게 되고 어쩔 수 없는 모임들이 생겼다. 내가 원해서 참여하는 모임도 물론 있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무수한 엄마들의 연락처와 뜬금없는 연락들이 부담스럽던 차였다. 그리고 어쩌면 지나간 인연들. 언젠가 한 번 연락해봐야지 마음만 먹을 뿐 몇 년째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하고 고이 간직만 해둔 전화번호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연락할 일이 없을 거라는 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또 묻히고 잊히게 될 거다.


이참에 휴대폰을 처음부터 사용해볼까? 그리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새롭게 저장해 나가볼까? 넓고 가벼운 인간관계보단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지금 당장 휴대폰의 전화번호가 다 사라진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좁디좁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다행스러움인가? 아, 물론 조금 귀찮은 일들은 발생하겠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니가 하는 게 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