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오늘도 모녀전쟁

나는 언제쯤 너그러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by 열정아줌마

"딸~오늘도 나가나?"

지난 화요일이었다. 종일 조용한 게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아이에게 톡을 보냈다.

"아,, 그게 영화 보러 갈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5시가 넘었는데?"

"네.."

"영화 끝나면 몇 신데?"

"8시 20분쯤이요"

"기숙사 점호 시간에 아주 딱 맞게 세이브되시겠네?"

"하하. 네 아마도 그럴 거 같아요"


이 어이없는 따님을 어찌해야 할꼬. 내가 안 물어봤음 말없이 보러 갔을 게 뻔하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다 큰 아이가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간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고, 그런 시간은 꼭 필요하기에 얼마든지 니 맘대로 하세요다. 하지만, 우린 지금 원거리 모녀가 아닌가. 적어도 기숙사가 아닌 곳에 몇 시간씩 나가게 되는 때에는 꼭 행선지를 밝혀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는데 내 걱정 따위는 또 아웃 오브 안중이다.

얼마든지 노시라고요~대신 어딘지만 밝히고 말이다.


8시 50분.. 연락이 없다. 엄마의 저기압을 눈치 못 챈 꼬맹이들은 하필이면 이때 싸움질을 한다. 누나가 발로 찼어요부터 시작된 이 초딩들의 싸움도 좀처럼 끝날 기미가 없다. 올라오는 화를 누르면서도 나의 온 신경은 시계에 가 있다. 9시면 점호인데 아직도 귀사를 안 한 걸까. 말만 한 딸내미 키우는 엄마 심정이 다 나 같은 건지 아님 내가 지나치게 걱정인형인지는 모르겠지만 9시를 5분 남길 때까지도 톡 하나 전화 한 통 없는 딸이 야속한 건 사실. 이놈의 가시나! 혼자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이 녀석, 어쨌든 9시 전에 전화했으니 암소리도 안 하고 그냥 잘 자 인사만 해야겠다'

내 딴엔 쿨하게 마음먹고 응답 버튼을 눌렀다.


"엄마......"

다 죽어 가는 목소리?

"왜? 먼일 있나?"

"그게요.. 저 내일 생결(생리결석) 좀 쓰면 안 돼요?"

머시라고라???? 좀 전까지 신나게 친구들과 영화 보고 인스타에 사진까지 올려댄 녀석이 기숙사 돌아오자마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앞 뒤 다 잘라먹고 생결을 쓰겠다고? 그것도 내일 아침 컨디션을 미리 예상해서 말을 한다는 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또 엄마 보골을 채우는구나.


"생결은 아침에 말해도 되지 않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그것도 실컷 놀고 들어오자마자?''


타이밍도 하필이면..

'이미 1차로 니가 내 화를 예열하셨고요~~ 네 동생들이 불을 확 질러 논 상태거든요~~~~~'

이제 뚜껑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다.


"컨디션이 안 좋아요.."

"니 인스타는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

"아니에요.. 계속 안 좋았는데 일요일에 예매해둔 거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하. 근데 화요일인 오늘까지도 암 소리 없다가 내가 일정 물어보니 그제야 갈지도 모른다고 한 거구나?"

"죄송해요.."

"일단 낼 아침에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타이밍도 참.. 네 동생들 싸우고 있어서 엄마 극도로 예민한데 니도 참 타이밍 못 맞춘다."


큰 놈이든 작은놈이든 다다다 좀 더 들이부었음 내 화가 풀렸을까? 그 뒤 일주일간 나는 주욱 화가 난 상태였다. 내 생일이 곧 돌아오다 보니 아이들은 선물이며 편지며 지들끼리 쑥덕쑥덕 대는 눈치지만 밴댕이 소갈딱지인 나는 "이놈의 시끼들 다 필요 없다. 약속 안 지킬 거면!!"이라고 엄포나 놓고 있는 못난이였다. 눈치 없는 아이들은 엄마가 왜 화가 났는지 아니 화가 나있는지조차도 모른 채 행복하시고 말이다.

화를 너무 오래 내다보면 화를 푸는 타이밍이 애매해진다. 다행히 내 생일이 나를 정말 나쁜 엄마가 되는 건 막아주었다.


"엄마, 생신 축하해요~~~"

월요일이 생일이다 보니 큰 아이가 있는 주말에 미리 생일파티를 했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만 봐도 화가 솜사탕처럼 다 녹아버렸다. 이럴걸 왜 그렇게 꽁하게 있었던 거야? 참나..

아이들은 내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자 이모에게 조언을 구하며 평소 내가 쓰는 화장품을 종류별로 준비했다. 고이 쓴 편지도 함께~


나는 아직 이 편지들을 읽지 못했다. 지난 일주일간 내가 부린 짜증이 무안하기도 하고, 호르몬 탓을 하기엔 너무 유치한 내 행동에 스스로 부끄럽기도 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짜증을 부린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라. 아이들은 못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되는 걸까? 이 무한반복의 반성에 끝은 있는 걸까? 오늘 또 어떤 일들이 내 보골을 채울지 모르지만 좀 리랙스해보자. 참을 인 세 번 하고 요것들 살려야지~ 오늘도 자기 반성중인 못난 엄마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좀 더 너그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힘을 내보자 아줌마!!



*보골 채우다 : 경남지방의 사투리로 염장 지르다와 비슷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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