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방울

내 마음이 편하면 되는겨~

by 열정아줌마

얼마 전에 아이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문득 얘기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신앙이 정해지는 거 말이에요. 내가 우리 집 얘길 했더니 친구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신기해하던데요?"

"그래?"


우리 집은 종교가 다양하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아가씨는 기독교고, 어머님은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이다. 나와 남편은 불교인 듯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기독교를 믿었으니 좀 애매하다 해야 하나. 친정부모님은 불교지만 여동생은 기독교고 막내는 무교다. 아마도 우리 집안은 앞으로도 종교가 통일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처음 시댁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 대문에 걸려있던 초록색 대나무가 뭘 의미하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찰나에 안방 벽에 걸려 있던 한복이며 칼이며 방울을 보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놀란걸 눈치챘는지 아니면 말을 못 하고 있다가 더 늦음 안된다는 생각이었는지 그제야(적어도 내 느낌은 그랬다.) 남편이 자기 어머니 얘기를 한다.


"얘기를 먼저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혹시라도 싫음 말해라"


"뭐 말하면 뭐? 되돌릴 수도 없는데 그게 우리 결혼 생활에 무슨 큰 상관이고?"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인생에 꽤나 많은 상관이 있게 될 것이란 걸 말이다.


아버님은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늘 성경구절을 인용하셨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시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다. 종종 성경말씀을 문자로 보내주시면서 본인의 믿음이 자식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셨지만 강요하지는 않으셨다. 와이프의 종교 생활도 존중하셨던지라 신내림을 받은 이후에도 어머님의 그쪽(?) 생활에 도움도 많이 주시고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셨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쿨하신 아버님이셨다.


신내림 굿을 하는데 몇 천만 원이 들고, 그 내림굿을 해 준 신엄마는 그 이후 연락조차도 되지 않지만, 그게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시어머니는 여전히 못하고 계신다. 아무렴 신내림을 받았는데 적중률 0%에 가까운 게 말이 되냐 말이다. 그 쯤되면 본인도 알 텐데 본인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이니 어쩌겠는가. 우리 큰 애를 백 프로 아들이라 우기시더니 태어나고 나서야 아들 같은 딸이라 둘러치는데 할 말이 없다. 정말 우리 어머니는 신이 보이긴 하실까?


선장인 남편 월급을 여기저기 본인 입으로 말하고 다니셨으니 주변에 사기꾼들이 꼬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지금도 우리 남편은 사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잘못된 단추는 인정하고 다시 풀어내지 않으면 끝까지 여밀 수밖에 없다. 다시 풀기엔 너무 늦어버린지도. 본인이 만든 프레임안에서 아직도 신내림 받은 사람이라 믿고 계시니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진짜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신통치가 않다)


뭐 어쨌든 그 신내림이 있기 이전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던지라 이번에 들어가면 이혼할 거라고 결심하시고 돌아오던 배 안에서 와이프의 신내림을 알게 된 남자.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빈자리가 이 불쌍한 여자를 이리 만들었나 보다 자책하면서 모든 걸 다 끌어안으셨다. 갖다 준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탓을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을걸 잃은 뒤였다.


모든 걸 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셨지만 집에서 점사 보는 것만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셔서 흔히 말하는 점보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무속인이 해야 하는 기도를 빠뜨릴 수는 없었기에 한 달에 두어 번 기도길에 올랐고 그 동행은 내가 도맡았다. 이것도 동네 신내림 선배가 있어서 그분이 하자는 대로 따라 하는 거였지만 말이다. 매 달 한 번 바다와 산속을 찾아서 기도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내가 기사겸 수행 보조로 따라다녔으니 무속신앙에 나도 어느 정도는 경험이 있다고 봐야 할까? 아이가 갑자기 보여선 안 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도 이런 집안의 내림을 받는 것인가 싶어 나도 아이도 바짝 졸았던 시간을 생각하니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본인의 업이라 생각하시고 끝까지 가족을 책임지려고 하셨던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안다. 그러한 포용도 결국 본인이 믿었던 종교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머님 앞에선 차마 못하셨던 그간의 속상함과 억울함, 그리고 미안함을 나에겐 많이 얘기하셨다. 어쩌면 아버님의 바다 같은 마음과 어머님에 대한 연민의 바탕은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님에게 종교가 없었더라면 이미 두 분은 빠이빠이했을지도.


우리 부부가 매주 하는 루틴이 있다. 아버님을 뿌려 드렸던 바닷가 근처 해안로를 드라이브하면서

"아이고, 아부지 잘 계십니까???"


신앙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이 편하면 그게 곧 신앙이 아닌가? 누구의 강요도 아닌 그냥 내 마음이 움직이는... 그게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또는 돌아가신 내 부모님이든 내가 믿고 의지하면 그게 곧 나의 종교가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지금도 각자의 종교를 존중하면서 잘 살고 있다.




사진 © kellysikkem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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