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면 물지도 모르니 조심할 것
나이가 들면서 예전과 달라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배고픈걸 유난스럽게 못 참게 되었다는 거다. 나만의 루틴대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식사를 하는 일이란 내 생활에 꽤나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먹는 행위에 집착하진 않는다. 시간 맞춰 정해진 적당량의 식사를 챙기는 거다.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이제 반구십이 넘어가는 나이가 되다 보니 더 강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계기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6~7년쯤 전 일이다. 굳이 따져보면 대략 몇 년도 몇 월이 나오겠지만 그렇게 알아내야 할 만큼 중요한 사건은 아니니 대충 그즈음이라고 해두자.
시어머니가 버스에서 넘어지셨다. 그때도 제일 먼저 달려간 건 나였다. 자식들은 다 일터에 있고 제일 가까이 있는 건 나니까 당연한 일일지도. 버스정류장에 철퍼덕 앉아 있는 시어머니를 보니 어이가 없다. 119라도 부르든지.. 그냥 저러고 나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게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병원으로 모시고 갔더니 고관절이 다 으스러져서 인공관절수술이 필요할 거 같다고 한다. 동네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 모시고 간 것도 엠뷸런스를 불러서 대학병원으로 옮긴 것도 다 나 혼자였다. 수술동의서에 동의하니 24시간 간병인이 있어야 한단다. 자식들은 일을 해야 하니 또 나밖에 없나? 아버님은 간병을 하시기엔 연세가 너무 많으시고 며느리는 둘인데 그 고민을 하는 것도 나밖에 없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다. 아버님과 의논 하에 간병인을 쓰기로 했다. 간병인을 썼지만 아이들 등원시키고는 매일 병원에 갔다.
"에미야 내일 그것 좀 갖고 오이라. 에미야. 에미야~~" (지금도 생각하면 노이로제 걸릴 듯)
대학병원은 장기간 입원이 불가능하다. 3주가 지나니 이제 퇴원하라고 한다. 뇌경색 후유증으로 원래도 거동이 옳지 않으셨던 데다가 고관절 수술의 여파로 혼자 움직이는 게 불가능했다. 집으로 모시고 간들 답이 없다. 그래서 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하기로 했다. 물리치료도 받고 좀 더 거동이 쉬워질 때까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으실 거 같다고 나름 가족들의 의논을 거쳐서 말이다. 하지만, 다 입으로만 말하고 결국은 또 내 일이다. 입원시키고 간병인 구하고 잡심부름에 퇴원, 전원까지 모두가 나 혼자만의 일.
나는 그날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갔어야 했다.
퇴원수속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사설 엠뷸런스를 불러 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전원을 했지만 중간중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겨서 오후 한두 시면 끝나겠지 했던 게 오후 5시가 훌쩍 넘어서야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혹시나 싶어서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겨둔 게 다행이다 싶었다. 남편은 미안해서 수시로 연락을 한다. 고생 많다 미안하다. 머 어쩔 수 없지 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다하며 애써 내 일인데 뭐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새로운 간병인에게 어머니를 부탁드리고 집에 녹초가 되어서 돌아왔다. 집에 오니 6시다. 엠뷸런스를 타고 오다가 생각이 나서 형님에게 전화를 했었다. 안 받는다. 바쁜가 보지. 나는 애들도 친정엄마한테 다 맡겨놓고 아침부터 이러고 있는데 같은 부산에 살면서 와보지도 않는데 내심 뿔이 나 있었다.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인지 식욕도 없다. 전날 저녁 이후 거의 24시간째 공복이다. 허기는 지는데 뭘 먹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톡이 온다.
'동서~전화 못 받았네. 오늘 옮기셨제. 이제 가까이 오셔서 동서가 편하겠다.'
이런 우라질. 나는 며느리고 니는 상전이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형님, 남이세요? 어찌 보면 형님이랑 나랑 같이해야 하는 일인데 왜 나만 해야 하는 일처럼 들리죠? 너무 힘들고 속상하고 서운하네요'
바로 맞붙어버렸다. 공복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이제껏 그랬듯이 나는 그냥 조용히 넘어갔을 거다. 배고픔이 불러온 예민함이 내 가장 곪은 감정을 터트려 버렸다. 그동안 형님의 무관심과 적당한 거리두기로 그녀가 나눠져야 할 몫이 오로지 내 것이 되어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결국 그렇게 터져버렸다. 제대로 터트리지 못할 바엔 아예 말을 꺼내질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공복이 불러온 동서갈등은 미안하다는 몇 번의 톡 주고받기로 결국 흐지부지 끝이 나버렸다. 이제껏 그러려니 당연한 듯 살아왔는데 굳이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었다. 말한들 바뀌지 않을 거란 것도 잘 알면서 말이다. 공복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네 형님~괜찮아요~버전으로 참았을 텐데 말이다.
그 뒤로 내가 폭발해 버리는 사건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내 허기가 내 예민함을 자극하지 않도록 늘 신경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날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배고프지 않기 위해 제 때 챙겨 먹는 습관이 생긴 게 말이다. 배고프면 서럽다. 이건 진리다.
사진출처 © siggi81p,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