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우리는 사람을 어디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수한 관계들 속에 가장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사이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이? 부모 자식 사이?
제 아무리 사랑과 혈연으로 엮여있다 해도 그 바탕에 믿음이 없다면 그 사이는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삽시간에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믿고 의지하는 것만큼 관계를 단단하게 해주는 것이 있을까? 그 믿음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그 관계는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부부간도 동료 간도 심지어 부모 자식 간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남편의 직장 신입 여직원이 퇴사를 하는 사건이 있었다. 퇴사 이유는 직장 상사의 폭언과 괴롭힘. 그 직장 상사는 바로 남편이다.
이런 이유가 사직서에 달리면 바로 회사 내 감사팀이 움직인다. 자초지종을 조사하고 연관된 사람들에게 조서를 받고 노동청 신고에 대비하기 위한 회사 나름의 준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회사의 감사팀에서 먼저 그 여직원을 면담했다. 무단결근 5일 차였던 그 직원은 당당히 회사로 나와 면담을 했다. 그다음 회사의 다른 직원들을 면담하고 마지막으로 남편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그건 그렇고, 지각이 많아서 본사에서 경고까지 받은 직원 아닙니까? 그런데 왜 사유서 하나 경위서 하나가 없습니까?"
"과장님, 본인이 못 적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받을 수 있습니까? 그 직원하고 얘기해보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폭언하고 괴롭혔다는 증거가 있던가요?"
"아니요, 증거는 없답니다"
"없을 수밖에요. 한 적이 없으니까요"
"네, 그건 다른 직원들과의 면담에서도 그런 사실이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 친구는 본인이 직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출근시간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업무처리 또한 미숙해서 많이 불편해했어요. 그런데 본인은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저한테 와서 왜 자기를 다른 직원들이 미워하게 만들었냐고 합디다. 제가요? 아니요~~ 본인이 잘못해서 다른 직원들이 싫어하는걸 제가 뒤에서 뒷담화했다고 생각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제가 책임자라고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합니까? 그러면서 감정조절이 안되는지 저보고 폭언을 했답니다. 그래서 제가 언제 그랬냐고 하니까 답을 못해요. 그러다 갑자기 다른 직원들한텐 오늘 자기가 한 말을 하지 말아 달랍니다. 아마도 저 친구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감히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그런 사유를 첨부해야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하니 그랬던 걸까요?"
남편은 요즘 친구들 중에 이런 노동법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많아서 가급적 대화를 안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업무지시는 카톡으로 전달하고 업무시간도 철저히 지킨다. 화가 나도 참고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만 했던 게 남편의 무죄(?)를 증명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는 피가 거꾸로 솟을 판이다.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생각했지만, 남편은 오히려 흥분한 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내가 아니니까 괜찮다. 아닌 걸로 밝혀졌고.. 입사하고 한 달 쯤부터 그 친구를 믿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더 조심했고, 요즘 낀세대들 직장에서 현명하게 대처 안 하면 한 순간에 억울하게 나락으로 간다. 주변에 많다. 증명 못하면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거고.. 어쩌겠노.."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온갖 본인의 장점을 어필하면서 신의를 얻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함께 가야 할 직장 동료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면접에선 너무나 반듯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잘할 거라고 믿었단다. 그렇게 어필했던 본인의 장점은 결국 거짓이었고, 그런 모습이 진실이었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은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고 말이다.
신의는 신뢰보다 좀 더 사회적인 느낌의 단어다. 믿음과 의리라는 의미에선 같은 맥락이지만 도덕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관계에서 믿음과 의리는 아주 중요한 가치임에 분명하다. 나아가 사회생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가치이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해나갈 수가 없다. 그런 신의는 결국 회사와 나라를 발전시킬 것이다. 지금의 정치판을 보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배신하고 불신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아니 우리 국민은 이러니 나라가 이 모양이지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고. (뉴스를 보면 요즘 화가 많이 나서... 잠시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사회구성원으로서 나는 신의가 있는 사람인가? 나라는 사람은 그냥 나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부인이며 누군가의 엄마다. 또한 누군가의 친구이며 또 누군가의 제자였으며 누군가의 동료였다. 그들이 나를 판단해 줄 것이며 그 판단을 받아들이며 나는 어제보단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그들의 판단이 긍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해왔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믿음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은 그렇게 발전하고 또 성장한다. 물론 걸러내야 할 상황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스 라이팅으로 지배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넘쳐난다.
본인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은 백 프로 본인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관용적이거나 지나치게 자학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여직원은 전자에 해당하겠지. 다른 이의 평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에게나 믿음직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거라고 감히 생각한다.
지금처럼 보이스피싱과 각종 사기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을 믿고 의지해서는 안된다. 제 아무리 돌다리라 하더라도 두들기고 두들기고 또 두들겨야 한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과 공존하며 사는 동안 최소한의 신뢰와 믿음은 당연한 게 아닐까?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냐 생각하기 이전에 나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진심은 닿는다. 내가 상대방을 신뢰한다면 그도 나에게 곁을 내줄 것이다. 때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도 당할 것이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첫인상과 직접 겪어보니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옥석을 가리듯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별해 내는 혜안이 우리에겐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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