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늘 공존한다
얼마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서 간호하던 동생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시키고 나오는 길이란다. 입원시키고 나면 홀가분해질 거라 생각하고 근처에 사는 나에게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했다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흐느끼며 울었다. 거동도 하지 못하고 대소변도 받아냈던 터라 더는 집에서 케어할 수 없어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주 잘했다며 이제 니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동생을 위해서도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가 동생을 놓아버렸다는 죄책감에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날로부터 딱 2주가 흘렀다.
아침 일찍 또는 밤늦게 오는 전화는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진다. 평소엔 그 시간대에 절대 전화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오전 7시. 한참 아이들 깨우고 아침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차에 울리는 친구의 전화는 올 것이 왔구나를 짐작하게 했다. 좀 전에 동생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는 것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울기만 하는 친구에게 일단 정신 차리라고 다독였다. 사람이 죽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남겨진 이들에겐 또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장례식장도 정해야 할 테고, 조카들 학교에 연락도 해야 한다. 주변인들에게 부고도 보내야 하고, 슬프지만 마냥 슬퍼만 할 수도 없다. 3일 전, 엄마를 떠나보낸 친구의 제부는 더 정신이 없을 거다. 연이어 엄마와 와이프를 보내고 일주일 내내 상복을 입어야 하는..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인지. 친구라도 정신을 차려야 되는 상황이다.
동생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3번째 재발은 방법이 없었나 보다. 이미 작년 12월에 병원에서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 동생을 집에 데려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호했다. 중간중간 응급실을 몇 번을 갔으며 엠뷸런스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간 적도 여러 번이다. 동생의 아이 2명에 친구 아이 2명.. 애 넷을 건사하면서 간호까지 하는 건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었다. 우리에게도 괜찮다 좋아졌다. 걱정할까 봐 더 이상의 말은 아꼈던 친구다. 그런 동생을 떠나보냈으니 어떤 기분일까 도무지 상상도 아니 가늠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에효.. **덕분에 우리가 다 모이네.. 고마워해야겠다. 언니들 이래라도 만나라고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 그리고 일 때문에 도통 시간이 안 났던 친구들까지 멤버 5인은 그렇게 2년 만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이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도 전혀 어색할 일이 없다.
"곗돈 갚은 게 증세가 좋아져서 그랬던 게 아니었나?"
"반이라도 갚아야 **이가 편하게 갈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
"안 갚아도 된다니까... 혼자 끙끙거렸드나 아이고 답답아.."
우리 5명은 20살 때부터 매달 2만 원씩 돈을 모았다. 결혼할 때 축의금으로 300만 원씩 풀었고, 1년 아니 2년에 한 번씩 만나다 보니 만나면 좋은 곳에 가서 플렉스도 하고, 그럼에도 천만 원 넘는 돈이 모여있어서 만장일치로 친구 동생의 병원비에 보태라고 보내주었는데 6개월 만에 반을 갚은 거다. 어릴 때부터 본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각자 사는 게 빡빡해서 더 못해주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생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는 건데.. 늘 후회만 가득한 인생이다.
울다가 웃다가 장례식장에서 우린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었다. 4시간 넘게 누구 하나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저녁때가 되니 문상객들이 몰려온다. 친구에게도 조용히 동생과 작별할 시간이 필요할 듯해서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사람이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자리에서 우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영정 사진 속에 있는 동생은 우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긴 간호 생활에 지친 언니에게 그래도 웃음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님 자기는 이제 저런 웃음 짓는 삶을 살 수 없음에 절망하고 떠났을까?
삶과 죽음은 공존한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또 살아진다. 문득문득 그 빈자리에 좌절하고 잠시 온 장기가 끊어질 듯 아프겠지만 그 강도도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질 것이다. 내 친구도 그렇게 당연히 받아들이게 되길.. 또, 이 슬픔이 너무 오래가지 않길 바란다. 모든 사람들이 아픈 가족을 위해 헌신하진 않는다. 그동안 동생 위주의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자기 위주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비록 동생은 4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병마에 지쳐 떠나갔지만 그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친구 본인의 삶도 소중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 덕분에 나도 조금 더 세상을 아니 내 주변을 돌아보고 하루하루에 의미를 주면서 살아가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얼마 전 힘들다고 바닥까지 우울해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또 다른 부정적인 것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겠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는 건강함에 감사하고 있다. 주변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나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가 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살아 있는 한 또 살아지는 게 인간 아니겠나? 영정 사진을 앞에 두고도 수육에 된장을 찍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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