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보면 다르게 보인다.
며칠 전의 일이다. 남편이 꿈속에서 돌부처를 보았다며 아침 일찍 어딘가를 가자고 한다.
'이건 또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고....'
분명 개꿈이다. 꿈을 잘 안 꾸는 양반이 신나서 꿈얘기를 하는데 거기다가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고 난감하다.
"그래 가보자~~ 근데 어딘데?"
부산 금강공원을 찾아 나서는데 괜히 설렌다. 금강공원 추억 돋는 곳이다.
어릴 적 아빠 엄마와 금강공원 안에 있는 동물원에 갔던 기억이 가물가물 있기는 한데 벌써 30여 년이 훌쩍 지난 아주 아주 옛날이야기인 데다가 아직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안타깝게도 동물원은 벌써 없어지고 금강공원은 아직 건재하단다. 그래, 아직 있는 게 어디야. 가보자고.
"그나저나, 갑자기 금강공원은 왜 가는데?"
"금강공원 안에 약수정사라고 있는데 거기 부처님을 돌로 만들었단다"
아...... 꿈에 보았다던 돌부처님........ 그 부처님 보러 가자는 말이구나.
절에 가는 건 좋아하는 데다가 금강공원이라니 어릴 적 기억이 날리 만무하지만 조금 들떴던 것도 사실이다.
약수정사를 가려면 금강공원의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한다. 낡고 오래된 케이블카다. 저게 운행이 되나 싶을 정도로 연식이 있다 보니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케이블카에서 탁 트인 부산시내 전경을 보니 잘 따라온 거 같기도 하고, 꿈속에 나타나주신 부처님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계단지옥 500미터를 가야 만날 수 있는 약수정사였다. 신기하게도 정말 대웅전 안에 부처상이 돌로 만들어졌다. 삼배하러 들어가서는 꿈에 나온 부처님이랑 닮았다고 혼자 들떠서 난리다. '그렇겠지ㅎㅎ'
대웅전에서 삼배하고 나오는데 목줄도 안 한 큰 개가 절 마당에서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깡마른 시커먼 개를 맞닥뜨리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사냥개인가? 버려진 떠돌이 개인가? 오도 가도 못 하고 나는 얼음이 되어 버렸고 남편은 갖고 있던 등산스틱으로 여차하면 한 방 먹일 셈인지 갑자기 방어 자세를 취한다. 그러길 잠시,
"여보,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어 보자"
남편이 방어 자세를 풀고 가만히 그 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도 덩달아 "안녕 멍멍아" 하면서 괜히 친한 척도 해본다. 시커멓고 다부진 체격의 개다. 당장 우리에게 달려들어도 이상할 거 없을 만큼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면서 다가오더니 남편 엉덩이 냄새를 킁킁 맡는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혼자 깔깔거리고 말았다. 다시 보니 절에서 키우는 개인 거 같았다. 내가 겁을 버리고 호기심으로 다시 그 개를 보니 눈이 축 쳐진 모습이 말 그대로 댕댕이~~ 너무 선하게 생겼다.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한 번 짖지도 않고 꼬리만 연신 흔들면서 주변을 맴도는 게 순간 너무 이뻐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다 화들짝 놀라는 내가 또 우스운지 남편도 웃는다.
"매일 스님이랑 불공드려서 그런가 개가 굉장히 인자하게 생겼는데? 보살개다 보살개"
남편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겁먹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순한 녀석이다. 잠시 긴장했던 우리가 부끄러워질 무렵 어디론가 이 녀석 사라지고 없다.
자기 집에 돌아갔나 보다 하고 돌아섰다. 내려왔던 계단지옥을 어찌 올라가나..
끝없는 계단에 아득해하고 있는데 10 계단쯤 오른 지점에 아까 그 보살개가 서 있다.
'어라 이 녀석 언제 저기까지 갔지..'
아까 무서워했던 게 좀 미안해서였는지 다시 나타난 녀석을 보니 괜스레 반갑다.
큰 숨을 들이쉬고 계단을 오르지 시작했다. 그새 녀석은 또 사라지고 없다. 진짜 집에 갔나 보네. 서운하려던 찰나 녀석이 다시 모습을 나타내고 앞장서 있다. 어라? 이 녀석 그러고 보니 우리를 에스코트하고 있나 보다.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먼저 가면서 뒤쳐지는 우리를 기다렸다 다시 가기를 반복.. 그렇게 계단 끝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고마워~~~ 멍멍아~~"
내가 너무 신기해서 고맙다고 했더니 자리에서 몇 바퀴 뱅글뱅글 돌더니 왔던 길로 쌩하고 내려가버렸다.
남편과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작정 개라면 경계부터 하던 우리가 이 녀석 덕분에 개에 대한 인식이 좀 바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 개가 생각나서 이번 주말에 다시 갈까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꿈에 보았던 돌부처님이 우리에게 다른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건지도 모르겠다. 편협하고 굳은 생각으로 먼저 우리가 그 개를 두려워하고 공격했더라면 그 개도 우리에게 똑같이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기다렸더니 먼저 다가와 준 개처럼 어떤 순간에도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성급함을 버려야겠구나. 돌부처가 가르쳐 준 교훈이라고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열려 있으면 보이는 모든 게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케이블카 안에서 한참 녀석 얘기를 했다. 우리한테만 에스코트를 해 준건지 절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면서 처음 해 본 경험에 가슴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조만간 다시 갈 생각이다. 개껌 사들고 말이다.
(그나저나 남편!! 기억을 다시 떠올려봐!! 돌부처님이 숫자 알려주신 건 없나? 여섯 자리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