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산악회 만들겠어요!

어쩌다 우린 등산에 꽂혔을까?

by 열정아줌마

"엄마~근데 요즘 왜 그렇게 산에 가는 거예요? 이러다 우리 식구 나 빼고 다 산악회 조성하는 거 아니에요?"

주말에 집에 다니러 온 큰 딸이 묻는다.

가족 단톡방에 정상 인증 사진을 이틀이 멀다 하고 올리니 궁금할 만도 하다.


"그러게 말이다. 야.. 엄마 종아리 웬만한 사이클 선수보다 두꺼울걸?"

탄식하듯 말했더니 아이는 배꼽 빠지겠다며 웃는다. 진짜라고 어쩔 거니 내 다리...


아이들 방학을 맞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부산에 있는 산을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다.

큰 아이 말처럼 무슨 산악회를 만들 요량은 아니고 가족 건강 증진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집에만 있는 아이들 좀 더 튼튼하게 키우고자 함이 목적인데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 거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아빠의 욕심? 본인이 건강해지니 가족들의 건강까지도 챙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처음엔 반갑더니 내가 힘들어 더 이상은 못해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너무 가기 싫어서 투덜투덜 나서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 성취감을 알기에 나 역시도 아이들을 다독여 함께 하는 중이다.


우리 남편은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는 심각한 복부비만이었다. 그럼에도 주전부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탄산음료와 과자, 빵 등을 즐겨 먹었고 야식으로 이틀에 한 번 꼴로 라면을 먹을 정도로 음식 조절 자체가 안되었다. 아이들 먹거리 사 준다는 핑계로 본인 먹거리를 주구장창 주문하고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아직 괜찮아.. 아직 젊으니 큰 이상은 없을 거야' 라며 호언장담했다. '약 먹고 있으니 괜찮다'가 입버릇이었다.


혈당체크조차 귀찮다고 마다하던 사람이었는데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음을 그제야 느끼기 시작했다. 건강을 방관한 사이 공복혈당은 300을 넘어섰다. 온몸에 염증성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고 가려워서 밤잠을 설치는 일이 계속되었다.

"나 몸이 좀 이상한 거 같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스스로 깨닫기 시작한 걸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여보, 좀 쉬자. 여보는 회사를 다니면 스트레스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좀 쉬면서 생각하자. 일단 건강부터 찾고"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용기로 남편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한 걸까? 아마 최근 몇 달간 내가 겪은 나의 무기력도 원인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쿨한 척해놓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는지도..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내 결정은 변함이 없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때는 이러다가 뒷목 잡고 쓰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막말로 시어머니처럼 뇌출혈로 쓰러져 몸이 마비되거나 재수 없어 유명을 달리하는 거 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본인은 몰랐겠지만 이미 작년 여름께부터 나는 이 남자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병들어 가고 있었다.


회사 다니면서 스트레스 없이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유독 자기 일에 욕심이 많고 온 정신을 거기에만 쏟는 사람이 있다. 남편도 그런 과여서 대충이 없는지라 아침 7시부터 퇴근해 집에 와서까지 회사와 본인을 분리하지 못했다. 하나를 위해 그 외의 것들은 포기해야 그 하나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모든 에너지를 일에다 쏟아붓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일도 잘하고 건강도 챙기는 똑똑한 사람들도 많은데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일과 건강을 바꾼 어리석은 사람.

회사 생활은 본인의 능력치에 딱 70프로만 하면 된다. 그 이상 하면 절대 롱런하지 못한다. 내가 주변인들과 남편의 생활을 보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70프로를 넘어서면 주변의 시기질투를 받는다. 본인의 사생활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지사고 말이다. 더불어 지금의 MZ세대들에게 꼰대 소리만 들게 될 뿐!! 하, 할 말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어쨌든 그렇게 일을 잠시 쉬면서 건강만 챙긴 지 4개월 정도가 되었다. 식단 조절이랄 것도 없이 스트레스가 없으니 군것질이 줄었다. 스트레스성 폭식과 단 음식만 찾던 사람이 스트레스가 없어지니 유혹을 참아내기 시작했다. 하체근육이 다 빠져서 오래 서 있는 것도 못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루 10분 걷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하루 10분, 그러다 20분, 그러다 한 시간.. 매일매일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길 바라며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걸었다. 자주 가던 절까지 2시간 넘게 걷기도 했고 왕복 한 시간 정도의 짧은 등산도 시작했다. 아침마다 부족한 근육을 채우기 위해 단백질 음료도 챙겨 먹어가며 말이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고 혈압도 혈당도 정상수치로 돌아왔다. 온몸을 뒤덮었던 염증성 두드러기들도 다 사라졌고 밤잠을 설치게 했던 가려움증도 많이 호전되었다. 몸무게도 15킬로 정도 감량했다. 이제 헬스장에서 본인의 사진을 찍을 정도로 자신감도 회복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걷기에 자신이 생긴 다음 시작한 게 등산이다. 전문적인 장비를 갖춰야 하는 등산코스는 아직 무리다. 왕복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코스를 짜더니 나와 아이들을 동참시켰다. 이미 부산에 있는 금정산, 백양산, 구봉산, 황령산, 봉래산의 정상을 다 찍었다. 내 다리가 굵어지고 있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오늘도 등산을 나섰을 텐데 (비야 고맙구나ㅜㅜ)


지난 4개월간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하고 남편의 건강을 되찾는데 나도 그도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건강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두고 살아갈 것이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으니 뭘 해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가도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안정적인 수입의 유혹은 거절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남편에게 휴식 시간을 주고 싶기도 하다. 여차하면 내가 나서면 되지 않나? 충분한 휴식은 그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 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조만간 또 바빠질테지. 그 전에 아이들과 등산이라는 건강한 체험을 하면서 갖는 그 두 시간의 행복을 조금 더 느끼고 싶기도 하고...


얼마 전 예능 방송에서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방송을 봤는데 먼 미래에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올해 안에 한라상 등반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지금의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기를~ 당분간 우리 가족의 등산은 계속될 예정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