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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Jan 19. 2023

소통? 불소통!

아파트앱의 불편한 진실

세상이 좋아졌다. 원패스로 카드를 댈 필요도 없이 공동현관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누르지 않아도 알아서 도착하는 프리패스 환경이다. 삶이 편리해지고 수월해졌다. 지방도시의 조그만 아파트단지도 이런데 서울에 새로 생길 하이엔드 아파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첨단 시스템들이 장착되겠지? 방문하기도 부담스러운 신세계 아파트들! 벨을 어디서 눌러야 하는지부터 헷갈릴지도 모를 일이다. 한평생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 없는 친정엄마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랬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입주한 지 1년이 안 되는 신축 아파트이다. 입주하고 한참 동안 커뮤니티 사용에 관해서 투표를 하더니 어느새 무인으로 운영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공고가 붙었다. 그렇구나, 하고 있는데 무인으로 커뮤니티를 이용하려면 아파트앱을 깔아야 한다고 한다. 운동이 필수인 현 상황이라 둘 다 커뮤니티 사용을 위해 앱을 깔았고 관리사무실을 찾아 지문과 얼굴을 등록했다. 세상 좋아졌구나 아파트앱으로 헬스등록을 하고 얼굴인식만 하면 이용이 가능하다니. 앞에 살던 아파트도 대단지 신축이었지만 일일이 카드를 맡기고 이용을 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던 걸 생각하니 편하고 반가웠다. 


그렇게 아파트앱을 깔고 헬스를 시작한 지 하루차... 매일같이 앱알람이 울린다. 무료 나눔이나 하자보수에 관한 정보 교환 등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소식통처럼 올라왔다. '후드 냄새가 안 빠져서 하자보수를 했더니 좋아졌어요 혹시나 냄새 안 빠지면 하자보수부터 하세요'부터 '아기 분유 무료 나눔 해요'까지 훈훈한 이웃들의 소식에 인터넷 소통 공간이 있으니 좋네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인터넷 공간이란 비대면 공간이다. 관리실에 전화 한 통 하는 거보다 앱실행하고 몇 자 적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불편한 주차에 이딴 식으로 할 거면 주차를 왜 하냐는 다소 격한 말투의 글부터 어느 집에서 공사 중이길래 이리 개념없이 시끄럽냐는 글까지.. 이러지 맙시다라는 소통을 가장한 불편한 마음을 비대면 공간에서 내뱉고 있었다. 점입가경으로 서로 싸우기까지. 담배연기로 시작된 글은 핑퐁게임처럼 주고받는 말싸움의 장으로 번지고 말았다. 이러자고 이용하는 앱이 아닐 텐데 입주민들 간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 오히려 자신들의 불만을 필터링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다 보니 불편한 시선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글 밑엔 좋아요만 달리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많음을 나타내는 안 좋아요 체크가 계속 늘어가는 상황이다. 


"여보, 내가 한 마디 적을까?"

"뭐라고?? 싸우지 마라꼬??"

"아니, 이곳은 소통하는 공간이지 자기 불만 얘기하는 곳이 아니라고. 의견을 제시하고 여러 입주민들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자는 거지 시비 거는 공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답답하잖아"

"치아삐라 마. 그냥 가만히 있으소!!"


내 말에 우리 집은 더 이상의 소란(?)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앱알람을 꺼버렸다. 시시 때때로 올라오는 민원과 껄끄러운 말투들. 그렇게까지 저격당했으면 담배는 좀 줄여도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피는 사람들까지.. 불편한 사실 투성이를 보면서 괜한 스트레스를 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라도 나서서 상황을 중재하고 싶지만 막말로 입주민대표도 동대표도 아닌 똥꿀레 아니던가? 나이 많은 티를 내고 싶어 안달 난 게 아니라면 그냥 조용히 사는 게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방관자의 자세도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단지 시작이 좋지 않았을 뿐. 


싸움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게시글은 삭제되고 없다. 하지만, 어젯밤에도 주차장 쓰레기 투척사진과 함께 막말의 글이 올라왔을 뿐이다. (이 글만 보면 내가 사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다 그런 줄 알겠다. 좋은 이웃들도 많으니 너무 오해는 하지 마시길!  )



*똥꿀레 : 예전 국민학교 시절에 반장 부반장등의 직책이 없으면 똥꿀레라고 불렀음.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쓰던 비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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