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이 뜬 것이다.
솔직히 공모전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다.
그 정도로 나는 글을 연재하면서도 서툰 왕 초보였다.
대문짝만 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 공모전 공지사항을 접한 나는
당선금액을 확인하고 신세계를 발견한 사람처럼
신기해하면서도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떠 오른 새로운 소재의 소설을 습작처럼
조금 써 놓은 글이 있었는데 그걸 믿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어리숙한 쉰다섯 살의 여자는
공모전에 덥석 신청하고 말았다.
물론, 항상 5화 이상의 여유 분량을 저축하며
글을 쓰던 나였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초보가 동시에 두 편의 장편 소설을 쓴 다는 건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아니, 중견 작가라도 이런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걸
나는 아주, 아주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당연한 건데, 겁도 없이 그걸 내가 시작하고 말았다.
첫 소설은 처음 마음처럼 글을 풀어 나갔지만
두 번째 공모전 글은 조금은 욕심이 들어 있었다.
공모전 글은 상금이 걸려있었으니까.
혹시, 우수상에는 들지 않을까 하는 어이없는 기대감과
주체파악이라는 뜻을 상실한 내가 있었다.
물론, 두 번째 글에는 첫 소설을 쓰면서 미흡했던 부분을
채우고, 순수함보다는 상업적으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을 가끔 쓰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불손한 의도가 다분히 들어있었지만
독자들은 조금의 의심조차 못 느꼈을 것이다.
그래봤자 내 글은 로맨스 소설판에서는 아주
순수한 측에 들어 있었으니까.
조금 인지도가 쌓인 내 글은 당연히 첫 소설보다
짧은 시간에 베스트리그에 등극했다.
첫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당연히 두 번째 소설도
읽어주었기 때문에, 조회수와 관심과 하트는 빠르게 올라갔다.
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내 모든 일상은
글쓰기에 맞춰져 있었다.
응원을 하던 남편마저도 내가 자지도 않고, 졸면서
글을 쓰는 날이 많아지자 걱정과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졸면서 쓰다 보니,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실수들이 글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님 은지가 아니라 봄이 아닌가요?"
"어린 신부가 들이대는 교수님에 나타나요."
댓글을 확인 한 나는 부랴부랴 글 수정을 하면서
작가란에 죄송하다는 글을 써야만 했다.
공모전 회차를 다 채울 때쯤 나는 자신만만했다.
왜냐하면 공모전 소설 조회수가 생각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정말!
어이없는 상상을 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도 나는 주 3회 연재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첫 소설과 두 번째 공모전 소설까지 나는
4천 자 이상, 주 6화를 쓰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한 회차를 쓰고, 주인공과 등장인물이
섞이지 않았나 하는 자체 점검을 해야 했다.
어떤 때는 나조차 등장인물이 헷갈릴 때도 있었으니까.
그 난리를 치면서 하루, 하루 글을 쓰던 나는
공모전 발표를 확인하고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때의 나는
나를 믿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만심이 스며있었다는 걸
공모전에 미끄러지고서야 알았다.
수천편의 글 중에서 나는 무슨 마음으로
공모전에 들 거라고 상상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공모전에 탈락했지만 글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썼다.
공모전 회차만 맞추고 글을 멈춘 사람들이 많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모전 탈락 이후
글을 올리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한번 시작한 소설은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이름을 검색하고 읽어주는 독자와
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쓰는 내 글이 경제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며, 약삭빠르게
처신을 할 수 없는 성격과 정서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은 미련해 보일 정도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끝날 것 같지 않던 날이 다가왔다.
거의 만 9개월 동안 사랑과 열정을 쏟은 나의 첫 소설을 완성시켰다.
그것도 120화가 목표였는데 125화 장편 소설을.
어리숙하고 미련한 쉰다섯 살의 여자가 쓴
서툴고 순수한 로맨스 장편소설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