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스 효과 좋은 유기농 필름

<리틀 포레스트>

by bittersweet


슬로우 라이프. 킨포크. 유기농(?).. 요즘은 이런 키워드가 일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여기저기서 도시를 벗어나 휴식과 평화를 찾자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트렌드가 형성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적한 곳이 그립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가 복작거린다는 말일 테고, 제발 좀 천천히 살자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 이리저리 치이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추위가 지난 3월의 극장가에 '유기농'을 표방한 영화가 찾아왔습니다. 영화 소개를 들여다보니 우리 사는 모습과 별다를 것 없는 소소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작은 영화' 같네요. 요즘 들어 비싸게 느껴지는 티켓 값 생각에 슬쩍 지나칠까 싶은데, 포스터나 예고편에서 '슬로우 라이프', '킨포크'의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이런 트렌드 생긴 지 좀 됐는데.. 이제야 영화로 나오다니. 그래도 반갑습니다.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한 영화로는 이런 콘셉트가 (거의?) 처음이니까. 커다란 스크린으로 만나는 시골 풍경이 궁금합니다.


<리틀 포레스트>의 사계절 포스터


예쁜 그릇(화면)에 고스란히 담은 우리 일상 그리고 이상


<리틀 포레스트>의 이야기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과 닮았습니다. 고등학교 마치면 대학 가고, 졸업하면 취업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취업하면 월급쟁이로 오늘만 버티며 살고. 영화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도 담았습니다. 지긋지긋한 취준생, 회사원, 도시인의 삶에서 벗어나 미세먼지와 스트레스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 우리를 대신해 주인공이 갑니다. 시골로.

그곳엔 화면으로만 봐도 쾌청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오랜 친구들과 마음씨 좋은 이웃이 있으며,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는 풍경이 보입니다. 게다가 인스턴트로 끼니 때울 시간도 부족하던 도시와 달리 나를 위해 공들여 한 끼 요리할 식재료가 잔뜩입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합니다.


영화는 주인공이 누리는 모든 걸 공들여 담았습니다. 관객의 눈을 속이지 않기 위해 계절마다 모여 제철(?)에 촬영한 화면은 모두 싱싱하고 아름답습니다. 인물들의 사연은 우리 일상처럼 팍팍하지만 그들이 모인 시골 풍경은 정겹기만 합니다. 자연의 풍경, 사람의 얼굴, 건축의 자태, 의상과 소품까지 모두 '예쁜' 이 영화는 기대 이상 눈호강을 시켜줍니다. 마치 아늑한 카페에서 킨포크 잡지나 무인양품 카탈로그를 유유자적 넘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듯한 기분이 들지요.


외래어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농촌 생활


리얼리티보다 팬시한 느낌으로


<리틀 포레스트>의 시골은 우리가 아는 그곳과 조금 다릅니다. 일상과 삶도 진짜 그렇진 않겠지요. 명색이 귀농 청년이라면 아무리 깨끗이 차려입어도 어딘가 흙이 묻어있기 마련. 거름 냄새 풍기는 논밭과 실상 지리멸렬한 시골집 상태도 영화 속 그것 같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킨포크 잡지를 찢고 나온 듯한 인물들의 의상과 무인양품 브로슈어에서 갓 꺼낸 듯한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일면 비현실적인 느낌이 듭니다. 나도 저럴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너무 예쁘기만 하다 보니 가끔 저건 가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우린 어디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답답한데 좀 쉬려고 극장에 갔더니 어딜 가나 힘들다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면.. 차라리 SNS에서 봤던 근사한 카페에서 값비싼 커피나 한잔 마실걸. 한두 시간 웨이팅 하더라도 남들이 맛있다던 햄버거나 먹어볼걸. 햇살 좋은 봄날에 어두컴컴한 극장에 앉아 있는 내내 본전 생각나겠지요?


'예쁨'으로 가득 찬 스크린


티켓값은 확실히 하는 디톡스 효능


다행히 <리틀 포레스트>는 카페나 맛집에 간 것 이상, 적어도 그만큼의 값어치를 합니다. 영화의 주요 타겟층인 2030 세대의 대표성을 띤 인물과 사연들은 다소 전형적이고 밋밋한 감이 없지 않지만 실상 그들과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공감할만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만 했던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여정은 두 시간 동안 즐기기에 만족스러운 에피소드로 꾸며져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하던 일을 다 내팽개치고 확 귀농해버릴 수 없습니다. 큰 맘먹고 며칠 휴가 내서 여행을 가거나 주말에 도시 안에서 비스무리한 장소를 찾아 반나절쯤 지내는 게 전부겠지요. 그렇다면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농촌의 사계절을 곱게 담은 영화를 보는 것 또한 유사 체험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 속에 힘들고, 아프고, 풋풋하고, 설레고, 자라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를 이입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보기 좋은 풍경과 훈훈한 이야기만 골라 담은 영화를 보다 보면 오랜만에 마음 편한 시간을 보냈다는 기분마저 듭니다.


해독제 삼인방. 김태리(왼쪽/혜원役), 진기주(가운데/은숙役), 임순례 감독(오른쪽)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좀 더 트렌디해지기 위해


소확행. 바쁘고 힘든 일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관객들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만족을 얻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합니다. 엇비슷한 장르와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는 한국 상업 영화 시장에 소확행을 원하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다양한 영화를 즐기고 싶은 관객들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앞서 가는 트렌드를 영화에 반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영화는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특성상 기획부터 제작 과정까지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띤 산업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흥행하기 위해, 혹시 모를 위험 요소를 줄이기 위해, 과거에 먹혔던(?) 것을 반복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동시대의 관객들이 원하는 바를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겠지요.


용감한 기획이자 시대의 흐름 상 자연스럽게 등장할 만한 영화 산업의 '상품'.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의 연기와 한국의 시골 풍경, 맛있는 음식을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

우리에게 잠시 쉴 만한 작은 숲이 되어 줄, <리틀 포레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