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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Jan 14. 2020

공간에 대한 기억

공간에 대한 기억이 보장되지 않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단상

20년 전 즈음 처음 해외여행을 할 때만 해도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음식들에 대한 감흥이 매우 컸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는 먹을 수 없거나 있더라도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 대부분이었던 관계로 텔레비전이나 책을 통해서 보면서 맛이 어떨지 상상만 했던 음식을 먹어 본다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샌가 서울은 가히 미식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 모든 나라의 요리를 만드는 음식점들로 범람하게 되었고, 외국의 유명식당들도 앞 다투어 오픈하게 되었으며, 특유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맛도 상향 평준화되어서 본토보다 더 맛있고 세련된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행의 큰 즐거운 중 하나가 일상이 되면서 언제가 부터는 외국에 가서 음식을 먹어도 이제는 예전과 같은 그렇게 큰 감흥을 느낄 수는 없게 되어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서울에는 이렇게 맛집들이 넘쳐나고 기존의 맛집들을 능가하는 새로운 맛집들과 핫플레이스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데,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들은 맛집을 제대로 찾을 수는 있는지, 맛집이 너무 많아 선택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는지, 또 일 년에도 수많은 음식점들이 폐업하고 그만큼의 새로운 음식점들이 생겨 나는데 이런 내용이 가이드북에 제대로 업데이트는 되고 있는지라는 괜한 걱정까지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몇 년후에 다시 서울을 방문했을 때 예전에 방문했을 때 좋은 기억이 남아 있던 곳들이 과연 남아는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해도 내가 출퇴근 길에 걸어 다니는 길의 주변 역시 일 년 사이에 바뀐 가게들이 대부분이고, 예전의 추억이 남아 있던 장소들 역시 몇 년 만 지나면 사라지는 곳들이 많이 있고, 심지어 내가 다녔던 대학교 교정마저 지하 복합공간 개발이라는 명목하게 싹 갈아 엎어졌기 때문이다.


여행을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 가면서 예전에 방문했던 도시를 다시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예전에 들렀던 장소를 다시 들러보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장소에 왔을 때의 분위기, 그때의 기분상태 등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다시 방문하게 된 도시는 단순히 이미 한 번 와봐서 구경할 것이 별로 없는 곳이 아닌 예전의 나를 만날 수 있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공간이라는 곳은 비단 물리적인 장소의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간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공간에 대한 기억을 저장해준다는 보장을 받지 못하고 사는 것인 것 같다. 언젠가부터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단골 가게는 언제든지 다른 가게로 바뀔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의 장소였던 건물은 언제든지 부수고 다시 지어질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 도시 자체도 재건축과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새로움과 편리함이라는 명목 하에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나 추억에 잠길 틈 마저 허용하지 않은 채 더 새롭고 좋은 것들에 대한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어떻게 보면 미래지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비정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나의 젊은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서울에 과연 몇 군데나 남아 있을는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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