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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Jan 19. 2020

월드시리즈 우승의 진정한 가치

기록 정정만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우승을 한 순간의 기억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제일 핫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은 이른바 치팅 스캔들(cheating scandal)이라고 불리는 사인 훔치기 사건이다. 사인 훔치기란 카메라, 망원경 및 전자기기 등을 동원하여 상대팀 투수의 사인을 훔쳐 해당 투수가 던지려는 구종 등을 자신의 팀의 타자에게 알려준 사건으로, 특히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ros)와 보스턴 레드삭스(Boston Redsox)의 사인 훔치기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언 및 정황이 나오면서 최근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에서는 2017년과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당시 월드시리즈 준우승 팀인 LA 다저스(LA Dodgers)에게 수여하자는 내용의 결의안까지 상정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휴스턴 애스트로스 및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 이들 팀의 우승 박탈은 물론 당시 준우승팀인 LA 다저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줘야 한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고 있고, 이에 대해서는 사인 훔치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LA 다저스가 우승을 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LA 다저스에게 우승컵을 수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 등이 서로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 중 어느 것이 타당한 것인지를 떠나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팀의 선수 개인에게 있어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져다주는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아마 선수 개인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어느 해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는 기록이나 그 우승이 그 팀의 역사상 몇 번째 또는 몇 년 만의 우승이라는 등의 사실보다는 ‘우승을 한 순간의 기억’이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어떤 선수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을 맞이 하게 된다면 그는 극도로 환희에 차서 팀 동료들과 얼싸안으면서 우승의 기쁨을 나누게 될 것이고, 시상식에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부터 수여받은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려보거나 트로피에 키스를 하면서 관중들로부터 축하를 받게 될 것이고, 락커룸에 돌아가서는 샴페인을 터트려 동료들에게 뿌리면서 우승이 가져다준 절정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한편, 그가 팀 동료들과의 축하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그 해 시즌 동안 팀 동료들과 같이 땀 흘리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기억, 이전에 월드시리즈 우승 근처까지  갔었다가 아쉽게 실패한 기억, 자신이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월드시리즈 우승을 꿈꾸면서 땀을 흘렸던 기나긴 시간 그리고 자신이 낙담해 있을 때 용기를 북돋아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모습 등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몸은 천근만근이겠지만 그날 밤은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할 것이다.


그 외에도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생 받을 연락을 한꺼 번에 받은 만큼의 축하전화와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고, 우승 이후 자신들의 팀의 연고지로 돌아가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한 도심에서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대접을 받으면서 우승 기념 카퍼레이드를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월드시리즈 우승이란 선수 개인에게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과 추억을 남기게 된다.

2018년 월드시리즈 우승 확정순간




이와 같이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통해 얻는 가장 큰 가치는 단순히 자신의 커리어에 ‘우승 기록’을 하나 추가하거나 이로 인하여 자신의 연봉을 높일 수 있었던 기회 같은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의 코어 메모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 평생 동안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었을 앞에서 언급한 ‘우승을 한 순간의 기억’ 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인 훔치기 논란의 결과 휴스턴 애스트로스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박탈되고 LA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정정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당시 LA 다저스 소속 선수였던 어느 누구도 ‘우승을 한 순간의 기억’을 경험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사인 훔치기가 실제로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서 승패가 뒤 바뀌었다면, 그들이 훔친 것은 단순히 ‘사인’이나 ‘우승 기록' 같은 게 아닌 상대팀 선수가 평생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리고 만약 경험을 했다면 평생을 간직할 수 있었던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에서 말한 '남자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과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싶다.




남자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과 가장 큰 성취는 온 마음을 다해 싸운 후 승리감에 싸여 전장에서 지쳐 누워 있을 때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빈스 롬바르디


"I firmly believe that any man's finest hour - his greatest fulfillment to all he holds dear is that moment when he has worked his heart in a good cause and lies exhausted on the field of  battle-vicorious"


-Vince Lombardi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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