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장을 마치고 나오던 효나의 언니는 호재가 될 공사 중인 이코비움 단지 가림 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고 한다. 발길을 돌려 차로 가려고 했을 때, 자재를 나르던 소형 크레인이 꺾여 도로를 내리쳤고, 그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는 효나의 언니, 효지가 되었다.
문제가 있다면, 효지는 30억대 자산가였고, 신부가 된 지 보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2.
장례식에 효지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시간을 찾아왔다, 친구들은 티는 내지 않지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기쁜 얼굴들이었다. 다 같이 고졸로 취업해서, 이따금 만나 직장 욕을 들어주기만 하던 조용한 아이가 느닷없이 상위 중산층이 되었을 때. 다들 효지에게 찾아온 행운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렇기에 효지의 죽음이 반가웠던 것이었다.
없는 환경에도 지독하게 공부해서 외고에 합격한 동생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효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손해사정업체에 전산 입력직으로 들어갔다. 암에 걸린 사람, 트럭에 치인 사람, 당뇨 앓는 사람, 불에 탄 사람들이 보내준 영수증을 지폐로 바꿔 동생에게 부쳐주었다. 친구들과 별 다를 것 없는 삶이었고, 동생이 전액 장학생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효지의 삶은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친구들이 동생의 명문대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던 것도, 효지가 아니라 효지의 동생의 삶이 나아지는 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상주인 남편이 효지에게 어울리지 않을 만큼, 외모적인 면에서도, 학벌적인 면에서도, 배경적인 면에서도 우월하다는 사실 역시 동창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하마터면 괴로울 뻔했던 것이었다. 간신히 버티는 자리에서도 밀려 나가고 있다는 장면을 보며.
장례식도 잔치라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 말이 틀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3.
“그대로 둘 거예요, 삼촌? 다 언니 돈이잖아요.”
“맞다. 네 언니 돈이다. 네 돈도 내 돈도 아냐.”
“그 사람 돈도 아니에요.”
“말조심해라, 네 언니 남편이다.”
“13일 동안만이었죠.”
삼촌은 그 말이 거슬리는 것 같아 보였다.
“효지가 죽을 각오로 좋아하던 애다.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했을 때, 효지가 지었던 표정을 넌 흉내조차 못 낼 거다.”
“언니 등골 빨아먹은 년 취급하지 마세요.”
티백을 찻잔에서 빼낸 삼촌은 뜨거운 물을 빈 잔에 부었다. 효나는 어릴 적부터 삼촌 아둔하고, 순진하다고 생각해왔다. 심지어는 멍청하고, 천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부모가 죽고 나서 언니와 자신을 돌봐준 유일한 혈육이 삼촌뿐이었다고 해도, 그 생각은 지워낼 수가 없었다. 외고에 들어가 수준이 다른 애들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본능이 되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효나는 삼만 원짜리 와플 디저트를 죄책감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자신을 죽어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따지고 보면 언니가 종자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이 전액 장학에 생활 장학금까지 받았기 때문 아닌가. 장학금 신청은 일종의 가난 경쟁이었고, 가장 힘들고 절실해 보이는 학생에게 몫이 돌아갔다. 빈곤한 자아의 쓸모는 그게 전부였다.
“보이차에도 카페인 있대요.”
계산하면서 효나가 삼촌에게 말했다. 걱정도 주의도 아니었다.
“저녁에 비온다더라.”
그 말 역시 걱정도 주의도 아니었다.
4.
효나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감은 채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머리를 말리던 헤어드라이어를 끄자 알람 소리가 들렸다. 네 시 오십 분이었다. 오전 강의는 7시부터였지만, 항상 이즈음 깨어나 버리고 만다. 늦게 일어나 지각하는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유원지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꿈이라고 해도, ‘늦게 일어나 지각’하는 불안감이 모든 장면에 스며있었다.
모래처럼 씹히는 피로가 입을 타고 들어와 목에 끼였다. 학원 사무실에 도착해, 교재와 소형 마이크를 챙겨 강의실로 갔다. 별관 301호. 이번 달에 배정받은 교실이었다.
오전 7시 수업을 듣는 학생은 대개 성실하고, 그중에서도 맨 앞자리에 학생들은 꽤 성실한 편이었다. 세유도 앞자리 가운데 앉아있었다. 흉터 없는 웃음으로 맞아주는 세유를 보고, 효나도 인사를 건넸다. 모두에게 보내는 인사이기도 했다.
상을 당하고 돌아온 사람답지 않은 밝은 목소리를 학생들은 프로의식으로 보았다. 언니의 죽음이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강의는 매끄럽게 끝났고, 몇몇 학생들이 위로의 의미로 음료수를 주고 갔다. 스타 강사까지는 아니어도, 팬층이 두터운 편이었다. 두 달째 오전반을 듣고 있는 세유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둘은 관계에 진심인 편이었다.
별관에서 두 블록을 지나면 나오는 보행자 쉼터에 효나와 세유는 원형 돌의자를 두고 떨어져 앉았다.
“괜찮아요?”
세유가 말했다.
효나는 식혜 밥알을 입안에서 굴렸다.
“일 끝나고, 다산 해안도로라도 돌래요?”
“사츠키에서 초밥 먹고 나서.”
“이따 맞은편 맥도날드 앞에 있어요. 태우러 갈게요.”
점심을 먹으러 세유가 먼저 자리를 떴고, 효나는 남아 식혜를 마저 마셨다. 점심은 이걸로 때울 생각이었다. 오후 강의 두 번이면, 저녁이 찾아올 것이다. 보채지 않아도 밤은 제 시간에 맞춰 어둠을 밀어 보내준다. 캔을 쓰레기통에 넣고, 학원으로 향했다. 학생처럼 보이기도 하는 뒷모습으로.
5.
전망대를 보고, 오른쪽으로 달리니 뚫린 길이 나왔다. 바닷가 쪽 시야를 가로막는 시설물이 없어, 밤바다의 육중한 움직임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완만한 곡선으로 해안을 따라 도는 차 안에서 효나는 유산에 대해 생각했다.
“잔금이 언제라고요?”
“8월 21일”
“얼마 안 남았네.”
몇 번을 알려주었지만, 세유는 또 물어왔다. 남의 일이란 건 원래 그렇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새집 들어갈 때.”
“딱히.”
“아, 맞다. 침대. 오른쪽 좀 꺼졌잖아요.”
말없이 효나는 창을 조금 내렸다. 바람이 틈을 타고 거세게 들어왔다. 그 바람에 뒷좌석에 있던 프린트물이 이리저리 날렸다. 가방을 반쯤 열어둔 채로 뒷좌석에 던져 넣은 탓이기도 했다. 잠시 후 세유가 창을 닫았다.
“언니가 어떻게 돈 벌었는지 알아?”
“어떻게 버셨는데요?”
“5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언니가 말 그대로 부랑자로 살았거든. 왜 공원 화장실 앞에서 하늘 보고 소리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내 아들 거지 년이랑 결혼 못 시킨다는 소리 듣고 나서, 적금도 깨고, 월세 보증금까지 빼고서 주식에 박아 넣고는 진짜 거리로 가서 거지 년이 된 거야. 근데 그때가 언제인지 알아?”
세유도 감이 잡힌 모양이었다.
“코시국?”
“부랑자 선별진료소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거기서 사람들이 주식 얘기하는 걸 들었나봐. 제노메디가 미쳤다고.”
그 해 20배로 뛴 종목이었다.
“길바닥에 쓸릴 때로 쓸린 옷차림으로 증권사로 달려가 확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오줌까지 싸가면서 울었대.”
어느새 차는 해변 가장자리 언덕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게 시작이었어.”
효나는 마치 동화책을 덮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내렸다 갈래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 안내를 들은 세유가 말했다. 절벽에서 야경을 볼 수 있는 산책로였다. 주차장에 완전히 정차했지만, 효나는 그대로 있었다. 세유는 그런 효나를 보고 농담을 하듯 리스닝 파일을 틀었다. 강의 주제는 해양 생물의 진화였다.
범람원에서부터, 강, 호수와 사막으로 확장되며, 바다 생물들은 육지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에게 육지는, 텅 빈 지도와 같았을 겁니다. 어떻게 보자면,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용감한 탐험가들이죠.
나른한 교수의 목소리와 함께, 시트 등받이가 내려갔다.
6.
이틀 뒤 효나는 변호사 친구가 다듬어준 내용 증명서를 들고 우체국으로 갔다. 받는 사람 주소지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언니의 새 집 주소가 적혔다. 영어 강사 급여로는 죽을 때까지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문득 언니와 반지하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발을 보며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효나야, 넌 부자 되면 뭐 하고 싶어. 미국 가고 싶어. 언니는. 나는 그냥. 그냥 뭐. 맥북 사고 싶어. 겨우 그거야. 아니, 새 거 나올 때마다 사려고. 끊임없이 사람들은 지나가고 있었고. 이런 식으로 살다 생을 마치고 말 것이란 예감이 방안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접수를 끝내고, 영수증 챙겨 우체국을 나왔다. 그런 예감은 만료된 지 오래였다.
7.
그날 마지막 오후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원장이 효나를 불렀다.
“효나 씨 많이 힘들지. 나도 형 보내봐서 알아.”
원장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효나는 원장이 이해한다는 표정이, 안다는 말이 웃기게만 보였다.
“학생이랑 만난다는 얘기가 있어.”
기침소리를 내며 원장이 말했다. 좋은 일로 부른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일 줄은 몰랐다. 굳은 얼굴의 효나를 바로 보지 않고, 원장이 이어 말했다.
“이번 달까지만 나오는 거로 하지.”
그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대출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잔금을 치르려면, 주택담보대출이 필요했다.
효나는 원장실에 있던 소파에 앉았다. 원장은 다시 한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 표정이 전혀 웃겨 보이지 않았다.
“실력 좋으니, 금방 다른 자리를 찾을 거야.”
“뭔가 잘못 아시는 것 같아요. 선생님.”
“잘못 알고 있어도, 이런 얘기 자체가 도는 게 문제야.”
진심으로 미안한듯 했다.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않을 미안함이었다.
우선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학원을 나왔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도현동에 새로 생겼다는 맛집에 친구와 가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하고, 무작정 걷고만 있었다.
길가 상점에서 나오는 불빛이 눈을 찔렀다. 원피스 차림의 여자와 부딪쳤고, 핸드백을 떨어뜨렸다. 여자는 사과하며, 핸드백을 주워주었다. 괜찮다고 답하고, 효나는 다시 걸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당연한 말로 자신을 감싸려 들었지만, 그럴수록 두려움이 발끝에서부터 갉아먹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구두에서 발을 빼, 다른 발로 다른 발을 밟았다. 발에 붙은 불을 끄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급하게 그 동작을 반복했다. 발등이 까져 스타킹에 피가 엉기기 시작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효나는 전화가 제 울음을 그치게 두었지만, 상대방은 끊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신경질적으로 핸드백에서 폰을 꺼낸 효나는 발신자를 확인했다.
언니의 남편이었다.
8.
“주말도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당연히 와야죠.”
언니와 함께 몇 번 보긴 했지만, 따로 보니 더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버리려고 보니, 아무래도 동생 분이 남길 게 있는지 한번 보시는 게 맞을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언니의 남편은 효지 방으로 안내했다. 큰 방에 어울리지 않게, 옷도, 짐도 적었다. 효나는 입을 만한 옷이 있는지 먼저 보았다. 돈을 벌어도 옷에는 취향이 없었던 언니였기에 어르신을 만날 때 입는 옷 말고는 챙길 만한 것이 없었다. 가방도, 화장품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언니가 돈을 버는 건 보았어도, 쓰는 걸 본 적은 드물었다.
다음으로는 가져갈 생각이 전혀 없는 언니의 물건들이었다. 어떻게 다시 구했는지도 모르는 전산입력 매뉴얼과 수첩형 기사 자격증, 그 외에 필기구나 수첩 같은 잡동사니들이 전부였다. 유일하게 값진 건 맥북 하나였다. 부자 되면 신형 나올 때마다 사 모을 거라더니. 기억도 나지 않았던 기억 속 언니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효나는 맥북을 켜보았다. 기본 바탕화면에 기본 앱이었다. 가져갈 것은 하얀 박스에 넣어두라는 말에 따라 맥북도 박스 안에 넣었다. 가져가도 좋다고 했지만, 원래 주인이 없으니, 꼭 훔치는 기분이 들었다.
정리를 끝내고 나오니, 식탁에 차와 다과가 올려져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방에 있던 언니의 남편이 나와 잠시 쉬었다 가라고 했다. 효나는 괜찮다며 그냥 가겠다며 사양했다. 언니의 남편은 그냥 가려는 효나에게 다시 말했다. 재산 문제로 이야기 좀 하자고.
아직 내용증명을 받아보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대화가 오갈지 몰랐다. 효나는 몰래 녹음 켜고 식탁으로 가 앉았다.
“조금 더 일찍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장례 뒷정리를 하느라 경황이 없었네요.”
“아닙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재산이라고 하니까, 조심스러워지네요.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
“괜찮습니다. 할 건 분명히 해야죠.”
효나는 머릿속으로 내용증명에 적힌 글을 생각했다. 일관성이 중요했다.
“사실 이게 다 누구의 것도 아니고, 효지 재산이니까. 효지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효지가 돈 번 이유는 잘 아시죠?”
“네.”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재산을 불리고 불렸다. 효나는 단순한 논리에 기가 찼다.
“인정받기 위해서 번 돈이고, 결혼도 했으니, 좀 쓰겠다는 거예요. 저야 어차피 제 돈도 아니고, 저 역시 효지랑 같이 사는 게 중요했지. 다른 욕심은 전혀 없으니까. 그러라고 했죠.”
착한 인간 코스프레를 어떻게 벗길지 효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동생한테 집을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래서 신혼여행 다녀오고 나서부터 임장을 다녔는데, 그날 ‘여기 좀 괜찮은 것 같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언니 남편은 울먹이며 말했다.
“동생도 보고 좋아하면, 여기로 할 거라고.”
휴지를 뽑아 얼굴을 닦은 그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까스로 진정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날 효지가 보고 온 집 정도의 지분을 드려야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 얘기 드립니다.”
말을 마친 그는 젖은 휴지를 뭉쳐 손에 쥐었다.
얘기를 모두 들은 효나는 녹음을 끝냈다. 월요일이면 내용증명서가 이 집으로 날아올 것이다.
악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