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라선이에게서 이사를 마쳤으니, 집들이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라선이 이사 간 곳은 디에이 스테이트였는데, 동도의 자랑인 투명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49층의 고층 아파트였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이삭의 최고 경영자인 라선은 한동안은 바다를 실컷 보고 싶다는 이유로 집을 구했다고 했다. 한국은 망해도, 영어는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라선은 개인 학습자들이 최적화된 학습 코스를 설계하고,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한국은 망해도, 영어는 망하지 않아야 했기에, 초기에는 한국 이용자를 주 대상으로 했지만, 안정된 기반을 잡고 나서부터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로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나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대륙 대표 아이돌 QoS 멤버 유주니가 영어를 에이삭으로 공부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덕이었다. 아이돌의 힘을 확인한 에이삭은 반도의 아이돌을 데려다 VR로 영어 데이트를 할 수 있는 학습 코스를 개발했다. 이게 빅히트 쳤고, 얼마 가지 않아 에이삭은 국내에서는 유니콘 기업이 된 최초의 에듀테크 스타트업이 기업이 되었다.
나는 폭발적 인기를 얻기 전, 해고당한 에이삭의 CMO였다. 처음 시작에선 우리는 ‘넌 CEO해라, 너는 CIO, 그럼 나는 CMO하며’ 킥킥거렸었다. 사업 규모가 커지는 중에도, 내가 ‘킥킥’거리는 정신 상태를 너무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탓에, 사기 저하를 이유로 쫓겨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해고라기보단 권고사직이었고, 더 엄밀히 말하자면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었다. 라선은 그날 밤 와인을 몇 잔하고, 헤어지기 전에 양어깨를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얌마, 성공하면, 퇴직금 나중에 몇 배로 더 준다. 내가 진짜. 임마 너 서운하다고. 잠수타고 막 그러지 마라. 누나 화낸다.’
지금은 몇 배로 더 주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 녀석은 아직 한 푼도 더 주지 않았고, 잠수는 지가 탔다. 명절이면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만난다는 말만 하고 만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뜻밖의 초대였고, 무덤덤했다. 아파트 앞 쇼핑몰 내 팩토리얼에서 공장버거를 먹으며 연습했다. 퇴직금 몇 배를 더 준다는 약속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꺼낼지.
2.
“야, 완전 반갑다.”
문을 연 라선은 말 그대로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파자마 차림으로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니 좀 차려입을까 하다, 너무 차려입으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아 꾸안꾸로 검은 무지티에 밴딩 면바지를 입고 왔는데, 시작부터 진 느낌이었다.
안 본 지 팔 년이었지만, 보고 나니 고작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 옆에 가방을 두라고 말하고, 라선은 부엌에서 사과 한 접시와 콩고물 한 그릇 들고 왔다. 사람 입맛은 그대로구나. 하긴 나도 콩고물에 사과를 찍어 먹을 생각이 없으니,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뭐하고 사냐?”
사과를 우적이며 라선이 물었다.
“공부하고 있어, 에이삭으로.”
그 말이 기가 찬지, 라선이는 가볍게 던질 만할 걸 찾았다.
“장난 말고.”
“아빠 도와서 가게에서 일해.”
“일양 순대국집! 아, 한 번 먹으러 가야 하는데. 부모님은 잘 계셔? 안부 좀 전해드려라.”
여전히 녀석은 유난인 구석이 있었다. 부모님 뵌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순대국 먹으러 온 적도.
“IPO한다며.”
“어, 아직.”
순간이지만, 녀석의 얼굴이 흐려지는 게 보였다. 그간 나왔던 기사들로 미루어 봤을 때, 원년 멤버들의 지분이 꽤나 낮은 것 같았다. 대주주 지분이 희석된 상태에서, 낮게 가치평가를 받아 가며 IPO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인수합병으로 엑시트해, 다른 일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무엇이 됐든. 라선은 최고의 결정만 할 것이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나를 자른 것부터.
사과를 다 먹고 나서 내가 씻겠다고 했지만, 손님한테 그런 걸 맡길 수 없다며 녀석은 대신에 나보고 고기를 구워라고 했다. 사과만 먹은 접시는 물에 한 번만 휘저으면 끝날 테다. 무슨 논리로 손님을 배려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안전한 저녁을 위해서라도 내가 고기를 굽는 게 맞았다.
팬케이크를 구워 주겠다고 자취방에 쳐들어와 프라이팬을 다 태워먹은 녀석이었다. 그래도 아깝다고 탄 부분을 긁어내고 얼마 남지 않은 팬케이크 부스러기를 쓸어먹었던 기억이 났다. 채소는 없냐고 묻자, 아래에 파프리카가 있다고 했다. 싱싱한 노란 파프리카였다. 고기를 올려두고, 파프리카를 썰어 녀석을 먹여주었다. 노란 파프리카가 빨간 파프리카보다 더 달다고 녀석은 주장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식탁에 앉지도 않고 서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둘이서 거의 5인분을 먹었다. 그중에 4인분을 녀석이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다운 설거지를 녀석이 했고 날은 파자마가 어울리는 시간대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오전부터 흐리더니,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법 거센 비였다. 거실 창으로 보이는 밤바다는 이 집이 얼마짜리 집인지를 다시 깨닫게 해주었다. 몇 번 번개가 쳤고, 빛이 칼처럼 어둠을 조각냈다 사라졌다.
“멋지지.”
옆으로 온 라선이 와인잔을 건넸다. 쓴 와인이었다. 내가 쓴 와인은 못 먹는다는 걸 알고 준 것일 테다. 두루미가 여우 집에 온 게 잘못이었다. 애주가답게 녀석은 독한 술을, 지독한 술을 잘도 마셨다. 나는 두세 모금에 취기가 올라왔다. 그러자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왔다.
“야, 몇 배로 더 준다며.”
라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소심하게 덧붙였다.
“퇴직금.....”
그 소리를 듣자마자 라선이 멱살을 잡았다.
“이 새끼가. 몇 배 더 줬는데, 쌩깐 놈이 누군데!”
이번엔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팔천 줬잖아. 팔천! 팔천이 장난이냐. 그거 받고도 고맙다고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그래 놓고 명절이면 추석 잘 보내라. 문자나 보내고.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난 정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돈 받은 적 없어. 언제 줬는데?”
“4년 전 처음으로 월매출 60억 찍었을 때. 그때 네 생각나서 챙겨줬는데.”
라선은 거의 뺨을 때릴 기세였다.
“어느 계좌로?”
“너 옛날 월급 계좌로”
나는 폰으로 4년 전 입금내역을 뒤졌다. 그러나 기록에는 유니콘 기업 사장 앞에서 보여주기 민망한 수입들이 전부였다.
이번엔 라선이 본인 계좌를 뒤졌다.
“아”
탄식이 나왔다.
“아 망할, 잘못 보냈다. 조중도 이 새끼 뭐야. 팔천 먹고 신고도 안 해?”
덜렁이가 착오 송금을 한 것이다.
“아 안 돼, 내 팔천!”
나도 탄식이 나왔다.
“그게 어떻게 니 팔천이야. 내 팔천이지.”
“나한테 줄 거였잖아.”
“그건 그렇지.”
‘그럼 지금 다시 주면 되겠네. 지금은 열 배는 더 벌잖아.’라고 미친 듯이 말하고 싶었지만, 간사한 인간이 자존심은 있어서, 차마 그 말을 낼 수 없었다.
허탈한 건 같겠지만, 내 쪽은 비율이 달랐다. 비.율.이.가. 달.랐.다.
비와 함께 묵직한 바람이 창을 쳤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았다. 내 가슴에도 쓰라린 안타까움이 휘몰아쳤다. 바람을 따라 지폐 뭉치가 빨려 올라가 남은 것은 깊은 어둠뿐이었다.
“바이 마이 지나간다던데, 태풍.”
유리창에 손을 대고 내가 말했다. 세차게 부딪치는 빗소리 때문인지, 약간은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무너지기야 하겠어.”
녀석은 알코올에 젖은 목소리를 냈다. 바다 위로 번개가 요란하게 쳤고, 바로 앞에서 친 번개라, 천둥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너 기억나냐, RGV에서 영화 보고 나와서 옷가게에서 같이 쇼핑한 거.”
잔을 채우러 식탁으로 가며 라선이 물었다.
“그런 적이 있었어?”
“베라 사거리, 닥터도넛 건물 8층에 RGV 있었잖아, 거기서 너랑 나랑 뭐 했는데. 쇼핑 아니었나?”
듣고 보니, 녹색 원피스 입은 녀석을 보고 구리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기억들도 현재의 필요에 따라 건져 올라온다. 하지만 왜 우리가 거기서 같이 있었는지는 건져낼 수 없었다. 옷 고르면서, 얼마 전에 만난 남자가 괜찮은 것 같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고자 만난 건 아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영화를 보려고 만난 건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이유를 찾아, 그 시간, 그 자리로 걸어가고 있을 때, 맘보가 흘러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라선이 느린 템포로 맘보를 추며 다가왔다. 맘보는 내가 전문이지. 우리는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추하게 춤을 췄다.
3.
시간을 확인해보니 막차 시간이었다. 내려올 필요 없다고 했는데, 녀석은 기어코 바래다주겠다며 함께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있었고, 올라오는 사람이 많았는지 층에 계속 걸리었다. 31층에서 마지막으로 서더니, 곧바로 46층에 도착했다. 라선은 파자마를 입고 잘도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라면 먹고 갈래?’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을 때, 라선이 말했다.
“미친” 어이가 없어서 피식했다.
“너, 방금 흔들렸지.” 라선이 옆구리를 찔렀다.
“개소리 좀”
“흔들린 것 같은데”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리더니, 멈추었다. 42층이었다.
“뭐야.”
라선은 1층 버튼을 눌렀다 떼보았다. 불이 꺼졌고, 다시 눌렀을 때는 돌아오지 않았다.
“계세요?”
이번엔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119에 신고하고 있어 봐.”
라선은 관리실로 전화를 걸었고,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안이라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밖에 누구 없냐고, 내가 소리쳤고 대답은 없었다. 라선도 문 가까이 와 사람을 불렀지만, 바깥은 조용했다. 다시 라선이 비상 호출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을 때, 팟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추락했다가 38층에서 멈추었다.
“우리 뒤지는 거 아냐.”
라선은 심각한 상황인데도, 은근히 들뜬 목소리였다. 제대로 취한 것 같았다.
“몰라.”
잠시 후 경보음이 울리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태풍의 영향으로 빌딩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바깥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이었다. 동편 출구는 이미 파도가 덮쳐 물에 잠기었으니, 서편으로 나갈 것을 당부했다.
방송이 끝나자, 빌딩이 한 번 더 휘청이는 듯했다. 분명 파도가 건물 아래를 때리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힘이었다.
“여기서 죽으면, 레알 개죽음인데.”
남 일처럼 라선이 말했다.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왤케 진지해, 재미없게.”
아직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라선에게 짜증이 났다. 나가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칭얼대는 얼간이를 무시하고 문틈 같은 곳에 있을 탈출 장치를 찾아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진동은 더 커지고 있었다.
“후회해?”
“뭐?”
“나 보러 온 거.”
“당연하지, 여기서 죽으면.”
“아씨. 나 한 번도 안 해봤단 말이야. 개 억울하네.”
라선이가 울먹이며 화를 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아니 이런 상황이라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가. 필터 없이.
“결혼하면, 너랑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왔어. 줄곧.”
지금부터 라선이 하는 말은 무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나와 라면을 먹고 싶은 것도,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고,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살펴도 탈출 장치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라선은 먼저 바닥에 퍼질러져 있었다. 멀쩡한 정신이라 손해 본 기분이었다. 포기하고 나도 라선 옆에 앉았다. 윤이 날 정도로 잘 관리된 내부 벽면으로 자취방 주인과 얼간이 손님이 비쳤다. 이것도 추억인데, 기념샷이라도 찍자고 라선이 폰을 들었고, 나는 이마를 때려주었다. 지지 않고 라선이 달려들었고, 어린애들이 장난치다 싸우기 딱 직전까지 다투었다.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던 라선은 내 입술을 깨물었다. 혀로 피 맛이 났고,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잡은 녀석은 다른 손으로 단추를 풀었다.
“미친놈아, 여기 카메라 있어.”
“눈요기 좀 하라지.”
라선이 윗옷 다 벗었을 때,
위에서 폭발하는 듯한 충격음이 들렸다. 늦지 않게 도착한 죽음의 구조대였다.
4.
눈을 떴을 때, 나는 죽어있었다. 실망스럽게도 라선이는 실종 5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죽으려면 같이 죽던가, 살려면 같이 살던가 해야지. 아니면 나를 살려주든가. 이건 형평성에 어긋났다. 심하게. 그냥 가게에서 육수나 끓이고 있을걸.
라선이가 복귀한 뒤 에이삭은 스웨덴 업체 도너카데미와 인수합병을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먹튀라고 비난을 받았고, 일부에서는 성공적인 엑시트 전략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무엇이 되었든 경영 이력으로든. 생존 이력으로든 라선인 기념비적인 인물이 되었다.
기사 발표 다음날 일양 순대국을 찾은 라선은 혼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한 숟갈을 뜨기도 전에 펑펑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학생 무슨 힘든 일 있냐며 달래었다. 걔가 어딜 봐서 학생이에요, 아버지. 현금으로 내면 오백 원 깎아준다기에, 라선이는 준비해온 현금 팔천만 원으로 계산했다. 매각한 금액이 얼만데, 네가 진짜 마음이 있으면 더 줘야지. 진짜.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녀석이 혼자 살도록 저주할 것이다. 녀석이 남자 손 잡는 일은 비즈니스 악수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미 죽긴 했지만, 죽어도 죽을 때까지 빌고 또 빌 것이다.
그나저나 조중도 이 놈을 잡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