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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세계적인 패션 월간지 델피의 편집장 클락 테리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뉴스에 뜨자마자, 전 세계 패션 피플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브라질 패션 거장 지스몬티는 클락 테리의 죽음을 두고, ‘우리는 인류의 넥타이를 잃었다.’고 표현했다. 프라다는 특별히 그를 위해서 검은 수의를 제작해주었다. 얼굴을 완전히 감싸는 검은 천과 검은 턱시도였다.
프라다 수석 디자이너의 명작이라고 패션계는 추도의 감탄을 보냈지만, 커뮤니티에선 악마는 ‘미라’다를 입는다는 드립이 유행했다. 훗날 문화인류학자가 이 시대를 연구한다면, 이 나라엔 과거로부터 고인을 능욕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우리 편집장은 악마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들개였다. 사람 물어뜯는 들개. 가장 좋아하는 사냥감은 ‘나’였다. 편집장이 죽는다면, 프라다까진 아니더라도, 파타고니아 정도는 입혀줄 용의가 있다.
이번 회의에도 제대로 박음질당했다. 모던보이, 모던걸 신혼부부부터 판교 신혼부부 st까지 젊은 부부의 복식사를 기사 초안은 동네 마트 전단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편집장은 ‘그래도 전단지는 쓸모라도 있지.’라고 침 뱉듯 말했다.
이 잡지사를 다니면, 수녀도 욕을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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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기초 봉제를 광탈한 덕에, 공업용 미싱 다루는 법을 1도 배우지 못해, 나머지 학년 동안 동기들-나중엔 후배들- 사이에서 얼만 타는 인간이 되었다. 오기에 브라더 미싱을 사서, 집에서 과제를 해갔지만, 학점은 변변치 못했다. 산업문명의 후발주자에게 자비란 없었다.
친구들이 멀쩡한 옷을 지어, 멀쩡한 친구들에게 선물해줄 때, 나는 천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지어냈다. 차라리 미술과로 가는 게 옳은 선택이었는지도 몰랐다.
막 학기에 들은 ‘디지털 전환과 패션 저널리즘’은, 4년 동안 갖다 부은 등록금에 대해 학교가 준 조그만 답례였다. 패턴도 제대로 못 그리는 의상학과생이 옷으로 먹고 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멸망도 가까웠고.
교수님은 제페토의 패션 트렌드를 연구하는 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른 시일에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바타의 옷 선택과 현실 세계의 옷 선택의 상관성을 살펴보는 연구는 흥미로웠다. 저널리즘은, 보다 흥미로웠다.
‘생산된 취향을 깊게 찌르는 것, 그것이 패션 저널리즘의 미학이다.’
이 문장의 주인이 클락 테리란 걸 알게 되었고, 패션 잡지에 대한 ‘망할’ 환상을 품게 되었다. 환상도 직업 선택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다. 삽으로 퍼낸 것처럼 눈 주위가 패었어도 남들 보기에는 아직 환상 속에 있으니까.
명절날 사촌 동생이 기사 잘 보고 있다고 해주었지만, 이모는 딸이 곧 폐간될지도 모르는 패션잡지를 보는 것보다 ‘과학좋아’를 보는 걸 더 좋아할 것이다. 나 역시 사촌 동생이 ‘과학좋아’를 보기를 바랐다. 아니면 ‘수학좋아’나.
파쇄기에 허탈함을 갈아 넣고 나왔을 때, 금비가 개별 포장된 생강 약과 두 개를 건네었다. 이번에도 귀면문 수막새 문양이었다. 지독하게 3년 동안 받아먹은 덕에 문양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깨질 때마다 금비는 이 약과로 위로해주었다. 깨포-깨지는 포인트- 잡는 도깨비라고. 시대를 거스르는 유머감각이었다.
회사에서 진실인 사람은 금비밖에 없었다.
처음엔 세상 미운 애였지만.
금비는 사회가 합의하는 범위에 해당하는 ‘예쁜’ 사람이었다. 연예인처럼은 아니었고, 모델 쪽에 가까웠다. 실제로 패션쇼 출장을 갈 때면 종종 모델로 오인받았다. 어떤 디자이너는 나중에 모델로 서줬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제안하기도 했다.
명문대 출신에, 집안 배경도 훌륭했다. 아무리 잘나 봐야 같은 곳에 있으면, 결국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금비는 긴 다리로 사무실 복도를 오갈 때마다 위화를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본인 스스로는 어떤 엘리트 의식도 없었다.
그게 제일 재수 없는 부분이었다.
속 좁은 나와는 다르게, 금비는 상냥하기만 했다. 동갑이니 잘 챙겨주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유독 신경 써주었다. 어지간히 안쓰러워서 그런 건지, 밥도 과할 정도로, 비싼 곳에 데려가 사주곤 했다.
밥을 얻어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금비에 대한 나의 태도는 달라졌다. 소박한 내 뇌가 사람을 구별하는 방식은 단순했다.
먹을 걸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일 시키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먹을 걸 주면서 일 시키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금비는 좋은 사람이었고, 편집장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퇴근 1분 전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토요일 7시, 소연재 D-1!!!’
그래, 그래. 2주 전부터 카운트 다운하는데, 잊을 리가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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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조금 넘어 소연재에 도착하니, 벽을 터 바(Bar)로 개조한 스무 칸 한옥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마당에는 DJ가 힌디 파티 음악으로 흥을 띄웠다. 조선이 품은 시타르 사운드였다.
금비의 생일잔치는 매년 만원이었다. 드레스 코드에 맞춰 예전에 경상 상회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서 받은 검은 저고리를 걸치고 갔다. 유행 따라 철릭 원피스나 반으로 자른 두루마기 재킷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다. 금비는, 뭐 올해도, 양갓집 규수 룩이었다. 밝은 노랑 저고리에, 차분한 쪽빛 치마. 다음 호 표지로도 손색없었다.
나를 본 금비가 크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고는 뒤이어 오는 손님에 인사 자리를 양보했다. 껴안으러 오는 금비를 물리치는 방법이었다. 예의범절 바른 금비는 새로 온 손님들을 모셨다.
서쪽 안채 가장 끝 구석방으로, 나는 향했다. 유일하게 장지문으로 한 칸 가려진 곳이었다. 안에는 이미 자형이 앉아 있었다. 목사 주제에 비구니 코스프레를 하고 왔다. 금비 지인 중 아싸는 나하고 자형 둘 뿐이었다. 그 덕분에 처음 생일잔치에 왔을 때부터 친해질 수 있었다. 금비와 고등학교 친구였던 자형은 내가 오기 전까지, 잔치에 불청객은 혼자였다고 했다.
“잘 있었어?”
“방금 전까진 아니었어.”
자형이 반쯤 깨진 미소를 지었다.
“좀 마실래?”
대답도 하기 전에, 자형은 막걸리 주전자를 들어 잔에 부어주었다.
자형의 손등은 여전히 붉었다. 욕정이 들 때마다 커터 칼로 긁어댄 흔적이었다. 화학적 거세라도 시켜주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왕성한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목사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과 상을 지나다니는 종업원들은 수라간 나인이나 주방에 있어야 할 숙수 복장이었다. 한 나인이 주전자와 잔만 있는 것을 보고, 감자전을 가져다주었다.
문짝 뒤로 얼마 전에 종영한 ‘피보나치 토끼 주제에’에 출연한 지혁도 보였다. 처음 잔치에서 유명인을 보았을 때, 눈을 의심했다. 금비 인맥은 금맥이었다.
“설교 준비는 끝내고 온 거야?”
“아무렴.”
“목사 정도의 성실성이, 외부 필자들에게도 있음 좋겠다. 진심”
다음 주부터 영화 평론가를 쪼아야 한다. 기획 수정도 해야 하고, 스케줄의 대기열엔 더 많은 과제가 밀려있었지만, 막걸리를 채우면서 무시했다.
“1년을 달로 돌리니까, 12번만 사는 것 같아.”
“주간지라서 다행이네, 난.”
조청을 갖다 부었는지, 감자전은 혀가 절여질 정도로 달았다.
DJ가 템포를 80년도 소울로 내렸다. 쉬어가는 구간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잖아?”
“그랬어?”
절 바지 입은 사람다운 반응이었다.
“그럼 천사는 뭘 입지?”
“한복”
자형은 턱 끝으로 어깨춤을 추는 금비를 가리켰다.
“천사라고? 다시 봐봐, 선녀 같을 걸.”
지그시 자형은 금비의 동작을 바라보았다.
“그러네. 하긴 유교순이니까.”
술이 동났고, 풍악은 다시 요란하게 바뀌었다. 조선 바이브였다. DJ는 모두 천국으로 보낼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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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거하게 마시는 바람에 필름이 끊겼고, 눈을 떠보니 자형의 교회 사택이었다. 자형은 새벽에 나갔는지. 덮고 있던 이불 외에 방에 남겨진 온기는 없었다.
침대 옆 책장엔 히브리어, 헬라어 성경과 전공서적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인텔리는 인텔리네. 책 두께가 금비와 자형이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되짚어 주었다.
대충 씻고 나오니, 오전 10시였다. 예배가 시작할 시간이다. 온 김에, 설교나 듣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형이 쓴 주간지 내용이 궁금했다.
예배당에 도착하니, 성가대가 찬송을 마쳤다. 교인이 오십 명 남짓 되는 작은 교회였다. 다행인지, 자형이 욕정을 느낄만한 상대는 없었다. 어르신이 전부였다. 본문 낭독 뒤에 말끔하게 정장으로 바꿔 입은 자형이 단위에 섰다. 다른 목사테이너들과는 다르게 자형은 건빵에 별사탕 같은 농담을 던지지 않았다. 교양 과목을 듣는 기분이었다.
중반에 이르러서는 성도 절반이 졸음에 죽어나갔다. 아싸 특유의 고지식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긴 강의 혹은 설교가 끝나고 축도를 시작했을 때,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의 반이 자리를 떴다. 눈감고 기도하는 룰은, 목사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신이 배려한 것인지 몰랐다. 자형이 그런 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인간은 아니겠지만
돌아가는 성도 한 명, 한 명과 악수하는 자형을 뒤에서 보며 기다렸다.
“안 갔어?”
과업을 완료한 자형이 뒤돌아 말했다.
“천사 있나 보려고.”
“아직도 천사 타령이야?”
귀신이라도 들렸는지, 그 생각이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아침부터, 어제부터, 어쩌면 그보다 오래.
“소개해줘?”
자형은 말을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소개야, 해주면 고맙지. 우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잡초가 군데군데 난 주차장에는 92년 식 프라이드 베타 한 대가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 창을 올리고 내리는, 나름의 클래식 카였다. 그걸 낭만이라 부를 수 있다면.
요즘 수동 면허 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신기해하며, 조수석에 탔다. 내부는 신차 급이었다.
조수석과 운전자석 등받이 사이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정리된 박스가 있었다. 분홍색 카세트를 하나 꺼내보니, ‘제2회 청소년 복음성가’라고 적혀있었다. 1번 트랙은 ‘은혜가 족하네’였다. 불온한 사람이라 그런지, 욕처럼 들렸다. 어떤 곡인지 궁금해 플레이어에 넣었다. 잠시 후 오디오에서 접질려진 음으로 소년, 소녀가 ‘은혜가 족하네’를 불렀다. 동창회에서 부르기 좋은 멜로디였다.
엔진을 달래기 위한-자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열을 하고 나서, 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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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은 서구 평생 학습관 근처 오피스텔이었다. 띠살처럼 정갈하게 창이 배열된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가 20층에 멈춰있어 계단을 오르기로 했다. 10층이라 무리는 아니었다. 숨소리 거칠어지는 기색 하나 없는 자형 따라가며, 스스로를 응원했다. 10층은 무리가 아니니까.
마지막 계단을 가까스로 디디고 비상문을 밀고 나왔다. 앞장선 자형은 1004호에서 걸음을 멈췄다. 목재 도어록에는 ‘천사의 방’이라고 적혀있었다. 번호를 입력하고, 자형이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웠다. 암막 커튼이 모두 창을 덮은 탓이었다. 자형이 불을 켜자. 천사의 방이 속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을 기본으로 한 모던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 공간은, 성인용품점이었다.
주거목적용 집이었지만, 성인용품점 외에는 달리 방풍경을 정확히 설명할 표현이 없었다. 편집장이 지적하고 지적하는 표현력의 한계가 또 한 번 증명되었다.
사방을 둘러싼 유리 장식장에는 다양한 형태의 기구들이 진열되어있었다. 일반적이고, 직관적인 순박한 제품부터,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감도 오지 않는 제품까지. 초보자와 상급자 모두를 만족시킬 구성이었다.
“정말 힘들 때 와서 보기만 해.”
얼마나 자주 오냐고 물으려던 내 생각을 읽었는지, 자형이 벽에 달려있던 토끼 인형을 던지며 말했다. 받아보니 보통 인형은 아니었다.
“네 집도 아니고?”
“목사 급여론 월세도 못 내.”
“금비 거야?”
자형은 정장 외투를 벗고, 거실 소파에 등 대고 앉았다.
“예전에 목매단 적이 있었어, 뭐 늘 같은 이유지.”
자형이 손등을 살짝 흔들었다.
“부모님은 ‘원래 그런 애니까’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어. 나도 마찬가지였지. 그런데 금비는 아니었어. 소식 듣자마자 병원에 와서 날 끌어안고 우는데, 자기 동생이 죽기라도 한 것처럼 울더라고.”
그러고도 남을 애였다.
“그리고 여길 줬어. 처음엔 남자를 붙여줬는데. 장난치냐고 화를 냈더니. 그다음부터 취향 테스트하는 것처럼 하나씩 모아주더라고.”
“사실 이거 다 금비 취향 아냐?”
그 말에 자형이 빵 터졌다.
“너 안 쓰면 이거 망고마켓에 다 팔자. 용돈 벌게.”
“그 정도면 횡령이지.”
유리를 열어 안에서 가지 하나를 꺼내 전원을 켜보았다. 매미를 잡은 느낌이었다. 매미를 잠재운 뒤 도로 넣어두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안엔 모과생강캔과 초정탄산수가 있었다. 모과생강캔을 골랐다. 자형에게도 하나 던져주었다. 캔 따는 소리가 차례로 났다. 모과생강캔은 지나치게 달았다. 금비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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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정신질환을 앓던 아들이 노모를 따라 예배를 드리러 왔다, 숨겨 들고 온 흉기로 목사를 찔렀다. 말리러 나온 교인들에게도 흉기를 휘둘렀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목사는 이송 중 사망했다.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나와 금비는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잡지사가 한창 바쁜 주간이었다. 편집장이 원고에서 ‘의와' ‘것’을 모두 빼라고 했다.
‘차라리 다시 쓰라 그래.’라는 말을 삼켰다. 맞는 조언이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