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신착서

그거 아니

by 설다람


노율이는 내게 과분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랬다. 전생에 운석을 막아내지 않는 이상, 함께 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율이 사람을 죽인다고 해도, 지켜줄 자신이 있었다.

업고 온 시체를 노율이 거실 바닥에 던지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야?”

“코너 도는데, 킥보드가 튀어나왔어.”

반이 피로 젖은 흰 블라우스는 벗어던지면서 노율이 말했다. 노율이는 화장실로 가 물로 윗몸만 씻고,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요구르트 상표가 크게 박힌 티셔츠였다. 회사 단체복으로 지급받았다던, 지옥처럼 싫어하는, 옷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가슴엔 ‘고란희’이라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그럼, 신고해야지. 이걸 들고 오면 어떻게 해.”

상식선에서 해결될 문제를 상식 밖으로 꺼낸 노율에게 물었다.

“다음 주가 승진 시즌이야. 이번에 못 올라가면, 내 인생 끝장이야.”

애 인생을 끝장낸 사람이 뻔뻔하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부르자.”

“구급대 아님 경찰?”

“둘 다.”

“늦었어.”

제안은 거절당했다.

남자애의 반쯤 갈린 코에 손을 대어보았다. 혹시나 숨이 붙어있는지 보려고. 불어 나오는 바람은 없었다.

부엌으로 간 노율이 목을 축이는 동안, 위키하우에서 시체 처리하는 법을 검색했다. 가장 먼저 나온 방법을 시체를 토막 내 일반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리는 것이었다. 삽화 속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잘도 죽은 사람을 썰고 있었다. 교과서적인 모습이었다.

다른 방법들도, 더 낫진 않았다. 뒷마당에서 소각하기. 압축포장 후 강물에 유기하기 등등. 동물의 숲 주민인 사람이 실천하기엔 모두 버거웠다. 그중에서 가장 역겨운 방법은 시체를 삶아먹는 것이었다. 뼈만 버리면 된다는 게, 이 방법의 장점이라고 위키하우는 소개했다.

설명을 읽는 것만으로 비위가 상해, 변기에 헛구역질을 하고 나왔다. 거실로 돌아온 노율은 고무장갑을 끼고 식칼을 들고 있었다.

“뭐하게?”

“자르게.”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거야.”

그래야만 했다. 고무장갑 끼고, 시체로 김장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위키하우 창을 닫고, 레딧을 뒤졌다. 더 마이너한 해결책들이 나올 것 같았지만, 노율이 식칼을 든 상태를 조금 더 연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운 좋다면, 노율의 이성이 돌아올지도 몰랐다. 그땐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브레딧을 타고 돌아다녔지만, 역시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r/babozit에서 종이박스로 관 만드는 방법 정도가 그나마 양호한 정보였다.

“그만 찾고 와서 도와.”

그럴 순 없었다. 레딧에서 나와 다시 구글링했다. 그러자 나의 간절함을 알고리즘이 알아주었는지. 나를 ‘문규선 소생 사무소’로 인도했다. 웹사이트로 들어가니,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쓰인 안내 문구가 보였다.

‘생사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자문을 구하거나 논의를 할 수 있는 조언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귀하에게 도움을 드리고 힘이 되어드릴 것을 약속하오니,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소생사 문규선’

나는 도움을 드리고, 힘이 되어드릴 것이라는 약속이 진심이길 바랐다. 문구 아래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차분한 남자 목소리가 답했다. 상황을 설명했고, 남자는 10분 내 도착하겠다고 했다.



도착한 소생사는 장례식 복장이었다. 당연하기도 했고, 어딘가 맞지 않기도 했다. 소생시키면, 장례식 복장을 입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닌가. 아, 소생시키러 갈 때는 죽은 사람 보러 가는 거니, 장례식 복장이 맞으려나.

노율은 상의도 하지 않고, 소생사를 부른 내게 화나 있었다. 식칼을 손에서 내려놓기 전까지 노율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현명해 보였다. 이 와중에도 노율은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피 냄새가 정신에 스미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달콤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사망 시각이 언제죠?”

취조하는 듯한 어조로 소생사가 물었다.

“2시간 전쯤요.”

노율이 날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소생사는 노트북과 미디 컨트롤러를 꺼냈다. 컨트롤러와 노트북을 USB 케이블로 연결하고, 미디 케이블은 시체에 꽂았다. 시체엔 케이블 단자가 없었지만, 두 가닥으로 갈라진 미디 케이블 끝에는 한의원에서 쓸 법한 장침이 달려 있었다. 그걸 왼쪽 가슴에 박아 넣은 것이다.

충분히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았는지, 소생사는 가져온 소형 망치로 바늘을 내리쳤는데 보는 사람 입장에선, 차라리 죽은 것이 나아 보였다.

세팅이 끝나자, 소생사는 노트북을 켰다. 나뭇잎이 돌아가는 로딩 화면이 지나가고 시작화면이 나왔다. 처음 보는 OS였다. 검은 동그라미 아이콘을 클릭하자, 서로 다른 리듬으로 흔들리는 네 가지 선이 화면에 떴다. 네 가지 선은 색도 보라색, 담청색, 핑크색, 민트색으로 모두 달랐다.

“고객님 몇 킬로로 주행하셨죠.”

“50킬로요.”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머뭇거리다 노율이 대답했다.

“88킬로쯤이요.”

‘아니, 어딜 도는데 그 속도가 나와!’라고 화내고 싶었지만, 아직 노율 근처엔 식칼이 있었다. 소생사는 화면 하단 메뉴에서 메트로놈을 클릭하고는 bpm을 88로 바꾸었다.

“적당한 템포네요.”

미디 컨트롤러 패드 부분을 두드리며 드럼 킥 소리를 체크한 소생사가 말했다. 88 bpm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소생사는 파일 탭에서 새 프로젝트를 열고, 곡 이름에 ‘굿_2021088_Take_1’을 적었다. 요즘 굿은 시퀀서로 만드는 모양이었다.

“남편 분, 이리 와서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남편은 아니었지만, 소생사에게로 가 옆에 앉았다. 소생사가 부탁한 일은 드럼 패드를 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계속 치면 되나요?”

“지금도 좋은데, 조금 더 여유롭게 해 주세요.”

청각의 눈금을 더 촘촘히 채우고, 다시 패드를 두드렸다.

내가 심장박동을 만들 동안, 소생사는 그 아래에다 베이스를 깔았다. 곤약으로 도마를 내리치는 듯한 소리였다. 쫄깃했다. 곧 탄탄한 그루브가 만들어졌다. 시체도 들썩거릴 리듬이었다. 고란희의 몸도 동의했다. 장침이 꽂힌 왼쪽 가슴이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팔다리도 함께 박자에 올라탔다.

뒤에서 바라보던 노율도 우리에게로 와 일을 도왔다. 역할은 코러스였다. 혼코노로 갈고닦은 솜씨에 흠 하나 없는 음색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고란희는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살아서 움직였다. 소생사는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장비를 정리했다. 가엾게도 고란희는 살아난 덕에 장침을 빼내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부모님께 피 묻은 옷으로 돌려보낼 수 없으니, 내 옷을 입혀주었다. 자주 입지 않지만, 버리지는 못한 셔츠와 면바지였다. 셔츠와 면바지는 이때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고란희는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소생사는 떠나기 전 내게 재능이 있다며, 국가 공인 소생사 자격시험에 응시해보길 권했다. 국제 자격인 ‘굿 디자이너’ 면허를 따면, 해외에서도 활동 가능하니 꽤 유망한 직종이라는 게, 소생사의 설명이었다.

죽은 애도 살려냈고, 의외의 적성도 발견했다. 노율이의 승진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런데 노율아 그거 아니.

이 분 수임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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