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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거스는 형편없는 재즈 바였다. 칵테일이 주 메뉴였지만, 주인의 술 섞는 솜씨는 최악이었다. 올드패션드는 꿀이 반 들어간 것처럼 달았고, 깔루아 밀크는 지하실 창고에서 꺼낸 듯한 쾨쾨한 냄새가 났다. 어지간해서는 맛없기가 어려운 나초도 여기선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다.
이곳을 찾는 유일한 이유는 오로지 아보카도 주스 때문이었다. 다른 재료는 몰라도, 오늘 들어온 아보카도는 모두 오늘 나가야 한다는 신념이라도 있는지. 주인은 아보카도 네 개를 갈아 넣어 주스를 만들었다. 주스보다는 죽에 가까운 아보카도 주스는 목이 막힐 만큼 진했다.
처음 아보카도 주스를 주문했을 때, 빨대를 저을 때 느껴진 무게감에 이건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시고 나서는, 다른 카페에서 아보카도 주스를 주문하는 일은 없어졌다.
입맛이란 건 한 번 바뀌면, 돌아가기 힘들다. 아보카도를 아낌없이 갈아주는 사장의 고집만큼은, 변하지 않기를 바랐다. 청승맞게 혼자서 아보카도 죽을 그리워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브의 밤은 크리스마스보다 혹독하기에, 이른 저녁부터 밍거스에 죽치기로 결심했다. 집에서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것과, 밍거스에서 아보카도 죽을 마시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딱한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와서 걷는 게 그나마 능동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일종의 착시일 테지만.
판단에 조미료를 뿌리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한참 전에 너덜 해진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멸종했을 것이다. 변명과 합리화는 진화 과정에서 발명된 사고 도구라 믿는다. 반성과 후회도 함께.
30년 전에 열렸던 세계 도넛 대회 포스터가 붙여진 문을 밀고 들어가자, 주인이 눈웃음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주인에게 나는 단골일 것이다. 아보카도 주스 외에 이 가게의 모든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티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ㄴ자로 굽은 카운터 왼쪽 구석에 앉으며, 아보카도 주스를 주문했다. 주문을 받기 전부터 주인은 냉장고에서 아보카도를 꺼내 믹서기에 넣고 있었다.
손님은 나와 카운터 오른쪽 구석에 앉은 남자가 전부였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남자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 시각에 지독하게 맛없을 칵테일 마시고 있으니.
잠시 후 아보카도 주스가 나왔다. 옳은 선택이었다.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을 내렸을 때,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누구 닮았는데.
그게 누구인지 기억 서랍을 뒤적거리다, 비슷한 사람 하나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닮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이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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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제대로 된 재즈 바-라이브도 하고, 칵테일도 괜찮은-에서 본 적 있던 기타리스트였다. 그때 나는 직장 동료와 함께 자연재해급 클라이언트와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고, 그 일로 팀장에게 박살 나, 위로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날 예정되어있던 밴드는 쌈박한 비밥으로 유명했다. 동료는 머릿속에 세워진 불만의 탑을 격렬한 사운드로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밴드는 펑크를 냈고 대타로 전공생처럼 보이는 베이스, 기타 듀엣이 들어왔다. 기타는 지금 앞에서 칵테일 마시고 있는 남자였고, 베이스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앞머리를 내린 여자였다. 탑에 한 층이 더 쌓인 동료는 테킬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기타는 평범했다. 특출 난 라인을 기대하기 어려운 연주였다. 반면 베이스 쪽은 달랐다. 단단히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중간중간 튀어나가는 기타 음을 회수하러 나가기도 했다. 바삐 움직일 때도, 서두르지 않았다. 음의 단위가 아니라, 공간을 단위로 연주하는 듯했다. 이걸 듣고도 어떤 신음소리나, 탄성을 내지 않는다는 건, 무례에 가까웠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무례한 사람이었다. 300bpm 넘는 곡을 단 하나도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재즈팬들은 항상 이게 문제였다. 물론 나는 신음소리도 내고, 탄성도 냈다. 속으로만.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내내 동료는 클라이언트와 팀장, 그리고 새로 추가된 대타 연주자들을 욕했다. 투덜거리며, 핸드백을 사정없이 휘둘러대는 바람에 거리를 두고 걸었다. 술 취한 난봉꾼과 한 걸음 뒤에서 따라 걷는 사람. 어떤 종류일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오해도 가능할 그림이었다.
회사를 나오고 연락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생각하지 않은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고맙지만 괜찮은 사이. 차려입은 사회에서 찾기 힘든 사람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풀려난 기억 때문인지, 아보카도 잔을 들고 옆으로 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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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걔요?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그때 베이시스트랑 아직 같이 연주하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의외였다. 중국인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영학과로 유학을 왔는데, 적응을 잘하지 못했는지 같은 학과 친구보다 음악과 애들과 더 어울렸다고 했다.
“잘 사는 집 애라 어렸을 때부터 빅밴드도 하고, 뭐 받을 수 있는 교육은 있는 대로 다 배웠나 봐요. 베이스는 저희랑 놀면서 시작했는데 처음 잡은 날 ‘도나 리’를 치더라고요. 업라이트로요. 트럼펫만 부는 줄 알았는데. 트럼펫도 장난 아니긴 했죠.
뭐 악기 여러 개 다루는 거야, 흔히 보니까 그렇게 놀랍지 않았어요. 근데, 그 퀄리티, 퀄리티가 달랐어요.”
남자 구겨져있던 조금 전 모습과 다르게 활기찬 얼굴로 말했다. 아는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때 베이스 연주가 인상 깊었다고 말해주었다. 기타 연주 이야기는 어물쩍 넘어갔지만, 개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한 번은 교수님이 클럽에서 잼하는 걸 우연히 보셨는데, 걔 보고 깊게 더 해볼 생각 없냐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때 방송국 세션도 뛰고, 프로들이랑 녹음도 하던 애가 있었는데, 그 친구보다 걔가 더 잘 쳤어요.
기교도 그렇지만, 음을 고르는 기준이 독특했어요. 어떻게 라인을 치는지 모르겠는데, 끝에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했어요.
말이야 쉽지, 한 번 길 잘못 들면 듣기 민망할 정도로 유치해지거든요.”
감상자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치고 해결하는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음 고르는 기준이 독특하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가서는 계속 연주하신대요?”
“아뇨, 가업 물려받는다고 들었어요. 바쁜가 봐요. 연락도 안 되고.”
남자는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침울한 남자의 목소리에 내가 다 속상했다. 남자가 기타를 잘 쳤더라면, 베이스 연주자가 남아서 연주를 계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지 않는다. 채워지지 않으면, 굳이 머무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밍거스가 망하면, 아보카도 주스를 먹지 않게 될 것이다.
거친 결정도 필요한 순간이 있다.
“아쉽네요.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했는데.”
남자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 이거 들어보실래요? 걔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건데. 몰래 녹음한다고 폰을 제 옆에 둬서, 베이스 소리가 좀 작긴 해요. 걔가 녹음한다고 하면 항상 기겁해대서.”
폰 음량을 최대로 높여 음성파일 재생을 재생시키고 남자는 내 쪽으로 폰을 들었다.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주인이 거의 들리지 않게 배경음악소리를 낮추었다.
기타 소리가 크긴 했지만, 애초에 베이스 소리를 담을 목적이었는지, 곡을 잇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만 짚었다. 가늘게 그려진 기타 음 위를 가볍게 베이스가 밟으며 마디를 넘어갔다.
좋은 음악이었고, 좋은 음악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좋은 음악이었다.
약속을 매듭짓듯 베이시스트는 떨리는 마지막 음을 손가락으로 눌러 곡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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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의 비밀을 남자에게 알려주고, 밍거스를 나왔다. 밖에는 얕게 깔린 어둠 아래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발 밑창이 다 닳은 탓에, 인도 가장자리에서 넘어질 뻔했다. 내일이면, 윈터 원더랜드는 제법 위험해져 있을 것 같았다.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소방차들이 출동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사이렌보다는 캐럴이 나으니까.
다치기 쉬운 밤은 걸음이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