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첫 주 ‘미련의 이해’ 수업을 신청한 60명의 학생들이 ‘610708’ 강의실에서 교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려면 10분이나 남았다. 앞에 앉은 청바지를 입은 남학생은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고 그 뒷자리에 연인은 이번에 신청한 수업이 어땠냐고 서로에게 묻고 있었고 그 뒤의 안경을 쓴 남학생은 ‘단편적인 사건의 연상’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책의 내용이 매우 따분하다는 듯이 한 장 한 장을 억지로 넘기고 있었다. 그 옆의 단발머리의 여학생은 폰으로 동아리 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앞에 말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수업을 기다렸다. 그 강의실에는 당연하게도 수업을 들으려고 온 자들뿐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남학생이 웹툰을 3화째 읽고 있었을 때, 연인이 수다를 끝내고 각자의 폰을 매만지고 있었을 때, ‘단편적인 사건의 연상’이라는 책의 페이지가 다섯 장 넘어갔을 때 강의가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각자가 하고 있던 일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두 번 문이 열렸으나 그들은 교수가 아니라 지각생들이었다. 지각생들은 교수가 늦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하였다. 비어져 있는 자리에 그들은 끼여져 들어갔고 먼저 도착해 교수를 기다리던 다른 학생들이 하던 행동 중 하나를 동일하게 실행했다. 60명의 학생들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60개의 행동을 하고 있었으나 그 목적은 같았다. 그들은 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웹툰을 10화째 보고 있어도, 연인이 다시 수다를 시작하여도, ‘단편적인 사건의 연상’이라는 책의 제2장을 다 읽었어도 교수는 오지 않았다. 강의실 앞의 시계는 교수가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 10분이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먼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연인들이었다. 둘은 ‘과사무실 찾아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가볼까? 같이 가자.’라고 말했고는 둘이 함께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 나서 십 분이 흐르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기류가 흘렀지만 모두들 그저 많이 늦으시는가하고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연인들이 강의실 밖을 나가고 나서 다음으로 강의실을 나간 것은 웹툰을 보고 있던 청바지 남학생이었다. 그는 웹툰을 보다 벌떡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직 연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강의 시작 시간 삼십오 분이 지났을 때 ‘단편적인 사건의 연상’을 읽고 있던 학생은 책을 덮어 가방에 집어넣었고 밖으로 나가였다. 그 이후에 학생들은 하나둘 교수를 찾으러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강의 시작 시각이 한 시간 십 분이 지났어도 교수는 오지 않았고 교수를 찾으러 제일 먼저 나간 연인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나간 청바지의 남학생, ‘단편적인 사건의 연상’을 읽던 학생, 그리고 나머지의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시작했더라면 수업이 끝나기 오 분 전인 시간, 강의실에 남아 있는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체육복 차림에 헤드폰을 쓰고 있었던 그가 홀로 강의실에 남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단잠에 빠져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있을 시간이었다. 강의실은 텅 비어있었다. 그는 헤드폰을 벗어 가방에 집어넣을 때까지 아무런 이상함도 눈치 채지 못 했다. 앞서 나간 학생들이 왜 돌아오지 않았는지, 아니 왜 애초에 그들이 모든 짐을 나두고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지 그는 몰랐다. 그는 팔을 내뻗어 기지개를 폈고 모든 짐을 챙겨서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시계의 분침은 원래라면 강의가 끝났어야 할 시간 1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강의실 문으로 비에 홀딱 젖은 교수가 들어왔다. 그는 젖은 외투를 벗어 탁탁 털어 강단 옆 의자에 걸쳐두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비가 갑자기 와서 길이 완전 막혔어요. 이정도로 늦을 줄은, 여기가 미련의 이해 수업 맞나요?”
체육복 차림의 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순간 시계가 빠르게 가고 있었던 거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원래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교수를 보았다.
“어디보자, 다른 학생들은 어디 갔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아마도 저를 찾으러 갔나보군요. 으레 있는 일이죠. 이 수업을 하면 첫 강의는 항상 이래왔거든요. 다행히도 이번에는 운 좋게도 한 학생이 있네요. 저번 학기에는 아무도 없어서 그냥 돌아갔었어요.”
교수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젊지만 머리가 꽤 빠져있어 이마가 둥글게 튀어나와 있는 데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어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보였다. 체육복 차림의 학생은 교수가 어서 강의를 마쳐주기를 바랐다.
“학생은 왜 이 수업을 신청했나요?”
체육복은 대답하지 않고 모르는 척을 했다. 사실 그는 달리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교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죠, 대부분이 모를 겁니다. 별 다른 선택권이 없었겠죠. 학점은 채워야겠고 들을 만한 과목들은 이미 다 차있으니 이런 과목을 들으려고 온 거겠죠. 안 봐도 뻔해요. 작년에도 그랬거든요.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이 수업을 잊지 못 해요. 올해만 해도 제게 연락 온 학생들이 몇인지. 요즘엔 아예 폰을 꺼두고 다닌답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과사무실에서도 제게 연락을 하지 못 했을 거예요. 이런 또 한 번 민폐를 끼치다니.”
교수는 체육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교수는 한 명의 관객을 웃게 해주려고 애쓰는 코미디언 같았고 체육복은 냉정한 관객이었다. 교수의 어떤 말에도 체육복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교수의 입은 지치지 않고 다시 열렸다.
“여기 있던 학생들은 저를 찾아서 강의실 밖으로 나와 과사무실이나 교수회관에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저와 만난 것은 학생, 당신뿐이지요. 왜 그런지 아나요?”
체육복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들이 제가 없는 곳에서 저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에요. 과사무실이나 교수회관에는 제가 없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죠. 그곳에 제가 있었더라면 당장 이 강의실로 왔을 테니까요. 저는 꽉 막힌 길 위에 있었죠. 그렇다면 학생은 어떻게 저를 만났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가 약속한 장소에서 찾아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길은 엇갈리고 누구도 서로를 발견할 수 없죠. 지금의 상황처럼 말이죠!”
체육복은 교수의 말을 흘려듣고 있으면서도 알겠다는 시늉을 했다. 교수는 혼자 신나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었을 학생들처럼요. 그들은 자신의 짐을 미처 다 챙기지 못 한 채 이곳에서 사라진답니다. 보세요. 짐이 책상 위에 그대로 있지 않습니까? 교수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필기구며 의자에 걸려있는 가방을 보며 말했다.
“이런 벌써 시간인 이렇게 됐군요.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입니다.”
체육복 차림의 학생은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는 쨍쨍하게 뜬 햇살에 눈을 가리며 계단을 내려갔. 그리고 깨달았다. 움직이고 있는 어떤 학생도 손에 우산을 쥐고 있지 않다는 것과 바닥에는 비가 내렸다는 어떤 흔적도 없다는 것을.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수업을 들었던 강의실 있는 곳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