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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편집실

어머니의 아들, 아들의 어머니

by 설다람

검은 배경에 밧줄에 묶인 남자가 움직이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는 한참이나 몸을 비틀어보지만, 소용이 없다. 남자는 고개를 위로 쳐들고 하늘을 향해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목소리로 외친다.

“거기 계세요, 어머니?”

천장에서 입만 달린 한 여자의 얼굴이 실에 걸려 내려온다. 입술은 지나치도록 붉어 마치 얼굴에 피어난 꽃처럼 보였다. 얼굴의 입은 숨을 깊게 들여 마셨다 내뱉는다. 입은 바삐 움직이지만 호흡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남자가 얼굴을 보고 말한다.

“어머니 왜 제가 이런 밧줄에 묶였나요? 일어나 걷고 싶습니다. 달리고 싶습니다. 공중제비를 돌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얼굴이 입을 열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너의 역할은 이 공간의 부피를 지키는 거란다.”

“전 부피조차 없어요!”

“이미 넌 충분히 채워지고 있단다. 네 숨소리로.”

그 말을 듣고, 그는 숨을 멈추었지만, 끝내 다시 내쉴 수밖에 없었다.

“기억해두렴, 우리는 하나의 탈이자, 하나의 율동일 뿐이란다. 이 무대는 너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네가 아니면 이곳도 없을 거야.”

“무슨 말씀인지는 알지만, 어떤 말로도 들리지 않아요.”

입은 기묘한 형태로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다시 펴져서 나온다. 다시 펴져 나온 입술은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어리구나. 모든 사람이 착각을 했단다. 너 역시 마찬가지고. 착각은 죄가 없지만, 착각을 믿는 죄가 될 수 있어. 그건 너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니?”

“그렇지만 타오르지 못한 불, 피지 못한 꽃, 빛나지 않는 별, 그것들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요? 그것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그것은 그들의 잘못인가요? 아니면 누구의 잘못인가요?”

“잘못은 없어 그것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부른단다.”

“저도 그걸 현실이라 불러요.”

“그럼 우린 다른 현실을 살고 있구나.”

“저도 그렇게 믿어요.”

“우리에게 다른 현실은 없어.”

“그럼요?”

“주어진 현실은 모두 같아.”

남자는 머리를 바닥에 찍었다.

“애쓰지 말렴.”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네가 너의 고집을 믿듯이 나는 너를 믿는단다.”

“저의 고집이 틀린 것이어도요?”

“물론이지 네 엄마니까.”

“감사해요. 제 어머니로 있어 주셔서.”

“고맙단다, 나의 아들로 있어 주어서.”

말을 마친 얼굴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어둠은 망치로 변해 굴러다니는 머리를 마구 내려친다. 유리 조각이 깨지듯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얼굴을 보며 밧줄로 온몸이 묶여있던 아들이 어머니의 얼굴에 가기 위해 꿈틀거리며 애를 쓰지만 여전히 제자리에서 더 나아가질 못 한다. 어둠 속에서 손이 나와 아들의 입을 막고 뒤로 끌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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