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9. 09.

by 설다람

재즈를 좋아한다고 하면, 아 그럼 라라랜드 좋아하시겠네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장담하건대, 재즈 좋아하는 사람들은 라라랜드를 재즈 영화로 보지 않을 거고, 재즈 영화로서 라라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제로일 것이다. 아니다. 없다. 확실하다.

재즈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Fred Astaire와 Ginger Rogers를 몰랐더라면, 가로등 아래에서 춤추는 장면이 재기 발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 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사람이 라라랜드가 인생 영화라고 말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좋은 영화일 수도 있지. 재즈에 죽고 못하는 주인공이 스탠다즈를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눈감아준다면. 그런데 눈을 감으면, 영화를 보는 의미가 없지 않나.


반면 버드맨은 재즈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재즈 영화다. 버드맨을 알게 된 것은 연기 수업을 수강했을 때였다. 첫 시간에 한 명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는데(맙소사, 수업 시간에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다!) 그중에 꼭 하나 본인의 인생 영화를 밝혀야 하는 룰이 있었다. 그때 가장 많이 나왔던 영화가 버드맨이었다. 세상에 버드가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이야. 그 버드가 그 버드?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 사실을 영화 보기 전까지 몰랐다. ‘버드는 당연히 버드 파웰 아닌가.’하는 생각은 또 나만 진심이었다.

다행히, 버드가 나오진 않기는 해도, 영화는 훌륭했다. 빅쇼트와 더불어 이 영화는 정말 재밌었다. 영화 초반부에 대기실 동선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롱 테이크가 이어지는 데 회전할 때마다 드러머가 귀를 녹이는 타격감 넘치는 스윙 리듬을 친다. 그 긴박하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사운드를 듣자마자, 이 영화는 무지 재밌을 거라고 예측했다.

스크립트 분석 수업을 반쯤 들었을 때, 이 영화를 보았는데, 수업 듣지 않았더라면 이해하지 못할 장면도 몇몇 있었다.

망할 각인 연극을 살려내기 위해 투입된 피도 안 마른 젊은 천재 배우가 한물간 노땅 배우가 스스로 짠 각본을 리딩할 때 ‘그 세 라인은 목표가 같으니까, 나머지 두 갠 집어치워요.’ 하는 씬이 그런 장면 중 하나였다. 그 얘기를 듣고 노땅 배우도 얼얼한 표정을 짓지만 동시에 그 말이 정확한 지적이란 걸 깨닫는다.


작품이 절대적인 하나의 주제를 지향하고, 작가가 완벽히 그 작업을 해냈다고 가정하는 고전적인 관점에서 보면, 극에 등장한 모든 요소는 헛되게 쓰인 것이 없다. 대사 하나하나에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 목표들의 지향점이 곧 작품의 초목표가 된다. 관객이 경험하는 시간과 동일한 시간에 제약을 받는 극의 특성상, 압축되지 않은 대사만큼이나 쓸모없는 것은 없다. 한 대사에 하나의 목표, 인물이 무대 위에서 멍청이처럼 서 있길 바라지 않는다면, 그걸 지켜줘야 한다. 이게 수업 시간에서 배운 내용이다. (교수님은 ‘완전히 잘못 이해했군.’이라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버드맨의 모든 대사와 컷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만 있다. 아마도 작가의 방에는 꽉 찬 쓰레기통이 있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 작품을 연극으로 올리는 것 역시 재밌는 부분이다. 편집자 고든 리시는 레이먼드 카버의 원고를 잡아 뜯어다, 거의 절반을 버렸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얘기하는 것들’의 매력인 단문은(카버의 매력인) 편집자의 난도질로 완성된 문체이다. 그러니 영화도 머릿속 편집자의 칼부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노땅 배우에게 악평을 쓸 것이라 협박하는 평론가 테스 갤러거는 레이먼드 카버의 두 번째 부인이다. 공교롭게도 라라랜드 여주인공인 엠마 스톤이 노땅 배우의 딸로 나온다. 영리한 젊은 배우는 에드워드 노튼이다. 에드워드 노튼의 아버지는 환경 변호사이며 전 지미 카터 정부 연방 검사를 역임했다고 한다.

버드맨은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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