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소년, 그리고 존 F. 케네디.

by 설다람

라이온보이란 소설이 있다. 고양이 말을 할 줄 아는 소년이 주인공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된 부모를 찾아 떠난다는 흥미롭다면 흥미로운, 평범하다면 평범한 내용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에 수입될 때, 해리 포터의 뒤를 이을 화제의 판타지 모험 소설로 소개되었다. 2000년도에 출간된 소년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 중 해리 포터의 뒤를 이을 화제의 판타지 모험 소설이 아닌 작품은 없었다. 심지어는 나니아 연대기마저 그렇게 소개되었다. 해리 포터의 신화적인 판매량을 재현해내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그래도 50년 전에 나온 책을 해리 포터의 뒤를 이을 판타지 모험이라고 홍보하는 건, 아슬란에게 미안해야 할 일이다.

그나마 라이온보이는 집필 중이었기에 홍보 문구에 마음의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뒤’라는 표현 하나는 맞으니까. 지은이는 지주 코더인데 원작가의 딸과 공동으로 쓰는 필명이다. 딸과 엄마가 함께 쓴다는 사실부터 판타지적인 분위기가 나는데, 판매실적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출판사가 기대해도 좋다는 식으로 장담을 했으나, 국내에는 시리즈의 첫 작품만 출판되었다. 처음엔 1,2,3,권으로 되어 있기에 그게 3부작인 줄 알았다. 사실은 그냥 한 작품 분량을 쪼개서 낸 것이었다. 마치 원작 출간일과 국내 출간일의 시차를 줄이려고, 분권으로 판매했던 해리 포터처럼. 그 스타일마저 모방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1부에서(당연하겠지만, 난 1부만 읽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위기는 위험 플러스 기회야. 그러니 침착해. 지금은 ’위험‘이니까, 기회가 곧 올 거야’라고 안심시키는 장면이 있었다. 이 글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위기는 위험 플러스 기회’란 문구는 확실하다. ‘이건 꽤 멋진데’라고 공책에 적어두었으니까.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 새벽에 학교 뒷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잠깐 한자로는 위기가 위험 플러스 위기라고도 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아닐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산 간이 운동장으로 새벽 체조 클럽에 나오신 동네 주민분들의 힘찬 구령 소리 속에서 난 혼란스러웠다. 그럼 대체 원서에는 그 부분이 어떻게 쓰여진 것이지?

그 후로 지하철 유리에 머리를 박거나, 호랑이를 닮은 고양이를 볼 때마다 종종 이 의문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명언집을 읽는데, 존 F. 케네디가 이런 말을 즐겨 했다고 나와 있었다. ‘중국어로 위기를 두 글자로 쓰는데, 첫 글자는 위험이고, 둘째는 기회의 의미입니다. 위험은 경계하되 기회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에 마상에, 설마 이것.

인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가가 케네디의 말을 차용한 것이라 결론지었다.

고양이 말을 할 줄 아는 소년이 북유럽 어느 나라 국왕과 열차를 타면서 대화를 나눈 게, 내가 라이온보이에서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눈이 계속 내리는 밤을 열차로 가로지르며 두 사람은 아마도 소년의 부모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2부를 넘어 3부의 마지막 장에 도착했을 때, 소년이 부모를 구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를 구해냈다면 그건 위험 다음에 온 기회를 소년이 제대로 잡아냈다는 뜻일 것이다. 존 F. 케네디가 바다 건너 영국의 소년과 그 가족을 구해낸 것이기도 하고.


고백하자면 3년 전에 ‘헌책 줄게, 헌책 다오.’ 같은 행사에 가서 라이온보이 3부작이 합쳐진 양장본을 구했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의문을 풀 수도 있었지만, 저 한 구절이 어떻게 쓰여 있는지를 알기 위해 넝마 같은 영어 실력으로 페이지를 뒤지고 싶진 않았다.

풀리지 않은 의문을 그대로 둔다고, 사자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기는 위험 플러스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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