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는 해야지

by 설다람

가능한 나쁜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 그러면 지금이 그나마 나은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보다는 느낌이 현실을 바라보는 조금 더 정확한 렌즈이다. 카메라처럼 렌즈도 다루는 사람 나름이다. 한창 필름 카메라를 들고 찍으러 다녔을 때, 사진을 잘 나오게 하는 것보다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추는 감각이 좋았다. 어차피 내가 찍은 사진이 엉망진창일 테니, 그 점은 처음부터 날려 보내도 상관없는 사항이었다.

날려 보내도 상관없는 사항이 많을수록 여유가 생긴다. 적재량이 준 만큼 배 속도가 빨라지듯.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민첩의 정도가 비록 시속 1mm 단위이긴 해도.


옆에 있어도, 옆에 없는 것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오랜 목표이다. 다른 사람 집에 붙박이장으로 남은 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받아줄지는 재량밖에 문제다. 그런 문제에 대해선 깊게 고민하지만, 깊게 빠져드는 편은 아니다. 깊게 빠져서 결과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경험의 지층에서 내가 발견해낼 수 있는 기록들을 최대한 활용해보려 노력 중이다. 이렇게 내가 발전적일 때가 있을까 싶다. 아침 알람을 두 번만 끄고 일어날 정도다. 이전엔 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 무시했었다. 현실은 아침부터 불친절하다.

조커가 배트맨에게 머리를 책상을 내리꽂히고 나서, 말했다. 내가 왜 세상에 사과해야 하지? 세상은 내게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는데. 클리셰 대사지만, 반복되는 것들에겐 그만한 가치가 있다.

눈이 벗겨질 듯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왼쪽 눈이 사시라서 한 눈 생활을 해서 피곤한 것 같다는 게, 억지로 짜낸 소견이었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면 한 눈만 감는 버릇이 어느새 생겨있었다. 원래 내 주시안은 왼눈이었는데, 왼눈이 사시가 된 후로 오른눈잡이가 되었다. 피곤할 때 감기는 눈도 오른눈이다.

머리가 아픈데, 견딜만한 정도다. 적절한 통증은 건강에 좋은 것 같다.


인스타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왜 사람들은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하지 않지만, 만약 내가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면, 기억을 분산 저장하여 백업해두는 것이 목적일 테다. 타인에게 공개된 정보는 어느 정도 손실은 있겠지만, 저장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타인의 기록에 내가 한 단어라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세상에! 난 그런 멋진 일을 감히 바라고 있었다.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내가 침울한 상태로 그대로 있어 주길 바란다. 울창한 원시 밀림처럼 심란함의 종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 북극 물개를 보호하는 사람들처럼,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다.

기꺼이 궂은일을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얼음이 갈라지면, 누구보다 먼저 배로 달려갈 거지만. 인류는 현명하고, 기후 변화에 잘 대처할 것이다. 인류는 개인의 삶에서만 멍청한 짓을 일삼을 뿐이다. 그 외에 영역에서 인류는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

프랙탈처럼 개인 단위에서도 그 합리성이 같은 모양으로 나 있기를 바란다.


야광바퀴가 달린 롤러는 멋지다. 롤러장에서 불을 껐다 켰다하는 역할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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