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양은 항상 꿈을 꾸니까.

by 설다람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해 오랫동안 두뇌 파티션을 해오다, 1년 전에 계정 관리 모델로 바꾸었다. 논리적으로 분할했다고 해도, 여전히 물리적인 디스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파티션의 위험요소였다. 두 개처럼 보여도, 결국엔 하나인 것이다. 하나에 오류가 나면 다른 쪽에도 영향을 준다. 심각한 경우엔 한 파티션을 그냥 버려야 할 수도 있다.

반면에 계정 관리 모델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 계정에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계정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커스터마이징의 자유도도 훨씬 높아진다. 파티션에서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볼륨 이름이었다. 그마저도 한글로 변경할 경우엔 제약이 많았다. 시스템 파일이 자주 꼬였던 원인이 불륨 이름을 한글로 지었던 것이었단 걸 깨달았을 때, 모래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싶었다.


계정 모델로 넘어오고 나서는 조금 더 아기자기하고 속닥속닥한 감각으로 정신을 관리할 수 있다. 우선 프로필 사진을 바꿀 수 있고, 닉네임도 ‘홀랑 타버린 반달사슴곰’(반달사슴은 오타가 아니다, 반달사슴곰은 반달사슴과 반달가슴곰의 혼종이다)처럼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 맥도날드 햄버거 포장용지가 세련되어 보일 만큼, 멍청한 납작 회색 사각박스와는 안녕이다.

우선 지금 생성한 계정은 3개이다. 원래 계획은 4개였지만, 내 메모리는 좀 무리수였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사양이 중요하다. 슬픈 현실이지만, 이 정도 타협도 내겐 감사한 조건이다.

3개의 계정을 소개하자면, ‘홀랑 타버린 반달사슴곰’, ‘탱커 인 마이 하우스’, ‘귀하의 존재는 저작권법을 침해하고 있습니다,’이다. 처음에 신세계를 접하고 흥분한 나머지 너무 길게 지은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모두 마음에 든다. 좀 긴 건 사실이니 평소엔 ‘밥’, ‘고타마’, ‘루’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애칭의 애칭이니, 메타 애칭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계정 모델의 강점은 신속하고 편리한 계정 전환이다. 예를 들면 밥으로 로그인한 상태에서 경찰서에 호두파이를 실수로 던져버린 만행을 저질렀다 해도, 즉시 고타마로 전환하게 되면 전혀 상관없는 일이 된다. 체포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고타마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포인트다.

더 매력적인 사실은 세션 종료 시 자동으로 캐시가 삭제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하루가 지나면, 깨끗한 머리로 일어나는 것이다. SSO도 가능하고, 북마크 불러오기도 가능하다. 클라우드 서비스도 확장해서 쓸 수 있다. 링크를 통해 부분 공유도 가능하다. 데이터 무결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심하긴 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정신의 낙원 아닌가.

브라우저 이미그레이션까지 수월하다. 왜 진작 이 모델을 적용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단점이라면, 하드디스크처럼 물리적 장치는 아니더라도 계정에 로그인하고 관리할 USER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USER는 안타깝게도 관리되지 못한다. USER에게 쌓이는 정보 부스러기는 곧 심리적 연속성을 가지게 되고, 회복 불가능한 기억이라는 섹터로 남을 위험이 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전기양은 항상 꿈을 꾸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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