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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1. 왜 모든 지하철역에서는 델리만쥬 냄새가 나는가.
2. 막상 사 먹으면, 왜 두 입 만에 질리고 마는가.
3. 그런데도 왜 금방 다 먹어버리는가.
이것이 바로 델리만쥬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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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설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지하철 델리만쥬는 단순한 빵이 아니라.
집단이 공유하는 허기가 만들어낸 허구적 실체라는 주장이다.
굳이 델리만쥬가 아니더라도, 세상엔 허기가 만든 허구적 실체는 많지만, 델리만쥬는 확실한 장소성을 가지고, 물리적인 매개물질이 존재한다.
우린 이 허구적 실체를 맡고, 핥고 씹을 수 있다.
신기한 건, 만쥬를 먹고 있을 때와, 먹고 있지 않을 때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지만,
만쥬를 먹었다는 것과, 먹지 않았다는 것에는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먹고 나서는 만쥬가 있었는지조차 잊고 만다.
옥수수 모양이지만, 옥수수 크림은 쓰지 않는 델리만쥬의 트릭처럼,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다고 얘기해준다.
그 트릭을 배우지 못해, 고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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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지하철 출근길
오피스룩에 연인 같아 보이는 ‘부부‘가 앞에서 걷고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면서 걷고 있는 둘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대화했다.
“야,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 안 하냐.”
“너야말로”
“너 그거 습관이야. 부모님 있는데도-”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칼로 긋듯이 살벌한 대화는 환승통로 끝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갈림길에서 여자는 3호선을 타러 아래로, 남자는 나가기 위해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따 저녁에 봐,“
“그래 저녁에 봐.”
그대로 둘은 끝까지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헤어졌다.
인상적이었던 건, 마지막에 ‘이따 저녁에 봐’라는 말과 ‘그래 저녁에 봐’라는 말은 모질지가 않았다. 오히려 애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본인들은 정작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냥 두 사람이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멋진 사람들이라서 그럴지도 몰랐다. 잘난 사람들은 싸우는 방식도 세련되었다. 출근길 지하철, 환승통로를 걸으면서 앞만 보면서 다투는 일에 대한 판타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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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만쥬는 종 구분상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빵이 아니라 과자류로 취급한다고 한다. 전문가가 아니니, 크게 문제 될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델리만쥬의 기만이긴 하다. 그래도 속아야 한다면, 달콤한 쪽에 속는 게 좋지 않으냐는 게 내 결론이다.
마주치고, 만지고 대화하는 것들은 종종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저녁에 다시 볼 수 없을 때는 있었다는 사실은 없었다는 것과 동일하다.
사람들이 델리만쥬 향이 나는 도넛이 나오길 기대하는 이유도 없었다는, 혹은 있었다는 다툼을 매듭짓고 싶어서 일 것이다. 도넛이 해결 못할 일은 거의 없다. 델리만쥬 향이 나는 도넛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이론적으론 없다고 판단한다. 기억 전쟁도 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