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혹시 뭐 하고 있는 중이었어?

by 설다람

나에게도 작지만 뇌라는 게 있으니까, 생각이란 걸 한다.

생각을 하니까, 나에게도 작지만 뇌라는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유익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판단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진 않다. 평균적으로 양호한 신경 전달 품질을 유지해주는 걸 보면, 못 쓸 물건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믿는 것이 편하다. 내가 나를 버릴 순 없다. 치워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건, 타인을 위한 배려이다. 배려심 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립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한 번도 없는 것도 같다. 저장 용량이 적은 탓인지. 필수적인 정보, 이를 테면 숨 쉬는 법, 걷는 법, 밥 먹는 법을 채워 넣고 나면, 다른 정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별로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던 순간을 ‘좋았던 때’로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볼 때면, 왜지?라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좋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을 어디서 구하는지, 알 수 없다. 출처가 불명확한 믿음은 기억의 표절시비만 일으킬 뿐이다. 좁은 뇌에서 저작권 소송이 벌어지길 원하지 않다면, 그렇구나 하고 대충 넘어가는 걸 추천한다.

뉘우칠 거리가 매일 쌓여만 간다.


‘좋았던 때’를 ‘그나마 덜 불안했던 때’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워하는 정신력과 시간이 아까운 순간들이다. 내일의 나를 위해서도, 그리워할 만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후회할 시간도 모자라다. 후회는 제법 하는 편이니,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역시나 성능의 문제이다. 문제는 어디에도 있고, 언제나 있다. 내가 문제인데, 나의 옆엔 언제나, 내가 있어주기 때문이다.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스스로를 기억하는 방식을 바꾸긴 어렵다. 미래를 기억해내는 데도, 버겁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크림빵을 먹으면서 걸어왔다. 먹는 내내, 왜 이걸 먹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작지만 뇌라는 게 있으니까, 생각이란 걸 한다. 조금만 더 성능이 좋았다면, 옥수수크림빵을 사 먹지 않았을 것이다. 밤바람은 차가웠다. 손가락이 가여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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