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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Dec 11. 2022

2022. 12. 11.


 어지간히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단위의 기준을 음악적인 요소로 치환하는 버릇이 있다. 40분이면, 10곡 정도는 들을 수 있겠네 하는 식이다. 반대로 10곡 정도 들으면, 40분쯤 지났겠네,라고도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취향을 눈금으로 일상을 재곤 한다. 그 돈이면 도넛을 3박스나 사겠다. 같은 훈수는 흔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은,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무엇을 고도화시켜 그럴듯한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니, 아직 하고 있다. 앞으로도 할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지 못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으름과 낙오감의 친절이 얼마나 지독한지. 주말이란 거미줄을 쳐, 허우적대게 한다. 훌륭한 사람들은 찐득한 줄을 맨손으로 잡고 뜯어내며 거실로 걸어 나간 사람들일 것이다.

 햇빛이 쓰라릴 만큼 아프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기도 할 것이다. 함부로 이럴 거야, 저럴 거야 하는 건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사실에 대한 편견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변명은 항상 질기다. 도무지 도망치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탈출구를 땜질해두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희망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위약이다.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문명의 수준이 놀랍도록 발전해 있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과학대백과사전에서 묘사된 미래 생활보다,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기술이 더 미래적이다. 아쉽게도 아톰과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이 예측했던 시기를 놓치고 말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내일에 대한 꽉 찬 믿음이 더 나은 걸음을 딛게 한다. 불신으로 가득 찬, 나는 믿음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법을 찾고 있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체계는 어떤 것보다 강하다. 전쟁과 대재해 속에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은 것은 시스템 덕분이다.

 이성이 지은 확고한 구조물이 멸망을 막은 것이다. 멸망이란 단어를 씹을 때마다, 쿠키 크런치를 부수는 느낌이 든다. 오레오를 좋아하진 않지만, 왜 사람들이 오레오를 좋아하는지는 알고 있다.

 부적절한 상상을, 적절하게 하고 있다.

딱히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소란스러운 기쁨은 널려있다.

그리 소중한 것 같진 않지만.


▤ 

아, 마침 밤빵을 먹고 있었다.

텁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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