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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죽고 있다.'는 '한국은 경제 위기다.'와 비슷한 말이다. 사실이고 심각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기에, 어떻게든 고비를 넘어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트럼페터 Nicholas Payton는 자신의 블로그에 'ON WHY JAZZ ISN’T COOL ANYMORE'라는 제목의 포스트를 올렸다. 포스트의 첫 번째 문장은 '재즈는 1959년에 죽었다(Jazz died in 1959)'였다. 글이 쓰인 게 2011년 11월 27일이니 올해(2023)로 재즈가 죽은 지 열세 번째 기일이다. (이 글을 쓴 일자는 10월 20일이나, 11월 27일과 그리 멀지 않으니 그냥 기일이라고 하자.)
그동안 재즈의 메시아로 등장했던 인물들을 여럿 있었다.
재즈 꽃미남 Jamie Cullum(1999)
Don't Know Why를 부른 Norah Jones(2002)
돌아온 Frank Sinatra라고 불렸던 Michael Buble(2003)
모두를 천국으로 보낸 Fall In의 Esperanza Spalding(2006)
현대의 모차르트, 유일무이한 Jacob Collier(2016)
재즈하는 틱토커, 청소년들의 비밥 우상 Laufey(2020)
Ella Fitzgerald의 영혼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Samara Joy(2021)
등등
의도적으로 선정한 것은 아닌데, 공교롭게도 재즈의 메시아들을 모두 보컬이고,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들로 고르고 말았다. 나 같은 사람도 즉각적으로 연상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인물들이라는 뜻이겠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메시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 중 Esperanza Spalding와, 특히 Jacob Collier은 독보적인 존재들이긴 하다. Jacob Collier라는 존재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어떤 피아니스트 분께서는 Herbie Hancock이 Jacob Collier과 화성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Herbie Hancock이 Jacob Collier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우리의 Herbie Hancock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다행히 Herbie Hancock은 모든 말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눴다.)
분명 Jacob Collier 대중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현대카드에서도 부를 정도면 그의 대중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도 재즈는 죽었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위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안타깝게도, 월드 뮤직과 컨트리 뮤직을 제외하고 재즈는 우리들 중의 최약체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도 컨트리 음악을 이겼다는 사실이 놀랍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재즈가 컨트리를 이기다니.
교실 구석에서 혼자 그림 그리는 아이 같은 재즈도 1920-1930년대는 옆 학교 친구들도 와서 보고 가는 인기쟁이었다. 이 시기를 흔히 Jazz Age라고 불리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제목인 'Tales of the Jazz Age' 때문에 널리 쓰이게 된 표현이라고 한다. 지금 재즈하면 낡디 낡은, 고루고루한, 뒷칸 노친네들이나 들을 구닥다리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도전적인 젊은이들의 발칙한 음악이었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 교수였던 Henry van Dyke은 재즈를 음악이 아니라, 신경을 건드리는 성가신 소음으로, 성적으로 자극적인 물리적인 욕정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역시 프린스터 대학 교수답게 놀랍도록 정확히 재즈의 본질을 간파했다. 다소 거칠게 선을 긋긴 했지만 재즈의 정체성은 대충 그 언저리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재즈를 노동요로 틀어두고 한낱 배경음악 취급하지만 재즈는 결코 라운지 음악/미디로 친 카페 음악이 아니다. 아마도 재즈 음악가들이 재즈는 죽었다고 개탄할 때는 재즈가 안 팔릴 때가 아니라, 라운지 음악/미디로 친 카페 음악으로 재즈가 취급받고, 또 그러한 플레이리스트가 몇 만뷰가 찍히는 와중에 Al Muirhea같은 연주자의 영상 조회수가 20회도 안 되는 걸 볼 때, 재즈 음악가들은 재즈는 죽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조회 수가 1천이 넘는 연주 영상에도 두세 명만 좋아요를 누르는 재즈 팬들도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다. 와 이 정도 연주면, 한 번은 누를 법한데, 그들은 누르지 않는다. 재즈가 죽길 바라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더 성실해질 필요가 있다. 씁쓸하게도 재즈는 노력하지 않고는, 살려낼 수 없는 음악이다. 그러니 좋은 곡을 들었다면 아낌없이 나누자.
Al Muirhea
Come Rain or Come 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