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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하는 것을 들으라고 했지만, 재즈가 어렵게 들리는 이유는 확실히 존재한다. 재즈는 철저히 연주자 중심 음악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연주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강렬한 맛이 있다고들 한다. 재즈가 감상자에게 주는 즐거움은 연주자가 느끼는 희열의 부산물이다. 연주자는 연주를 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자신의 연주를 듣는 감상자이기 때문에, 외부에 별도의 감상자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즉 감상자는 연주자에게 필수적인 음악 요소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자기만족만을 위한 연주가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불친절한 소설이 있듯이, 불친절한 음악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불친절한 소설과 소통할 수 없는 소설이 다르듯, 불친절한 음악과 말을 건네지 않는 음악은 분명히 다르다.
현대 재즈 연주자들은 지적인 허영심으로 가득 차, 설계된 자유를 연주한다. 아방가르드 재즈나, 프리 재즈의 영역에서 그런 자의식 과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감히 말하건대, 내 기준에서는 그건 재즈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다. 날조된 진실조차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작품이라고 1시간 동안 앉아서 공연을 보면서 손뼉 치는 사람들이, 정말로 그런 음악을 들으며 기쁨과 감동을 느낄까. 그게 음악의 목적이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한다면, 그게 굳이 음악일 필요가 있을까 생각한다. 음향을 이용한 지적 자극 프로그램 같은 명칭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Russell Malone은 과거의 재즈는 사람들을 춤추게 했지만, 지금의 재즈는 평론가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발전하고 있으며, out for out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즈에서 조(F key, C key 등)의 스케일을 벗어난 음을 outside note라고 한다. inside note로만 연주하다 outside note를 치면, 세련된 느낌이 난다. 신음소리 타이밍이 여기다. 하지만 곡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세련됨만을 위한 세련됨은 작위적이고 긴장감만 유발한다. 그런 곡들엔 '해소'라는 개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음악은 긴장과 이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과정에서 율동이 만들어지고, 서사가 생긴다. 재즈가 반드시 사람들을 흥겹게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사람들 곁에는 있어야 한다. 전위적인 음악을 바라보고 속으로는 본능적인 지루함과 거부감을 느끼지만 겉으로는 찬사를 표하는 일부 평론가 및 고급 감상자들은 벌거벗은 임금님과 다름없다.
근시안적인 태도, 굳은 생각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이 관점을 버릴 생각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현대성을 가장한 난해함은 고등 사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보컬 곡을 팝으로 치부하는 것도 비슷한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탠다즈 스윙 보컬곡이 재즈 곡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길잡이란 사실은 틀림없다. 그 노래가 스윙하기만 하다면. 애초에 그런 노래들을 '쉬운 노래'로 보는 시선 자체가 연주자 및 고급 재즈 감상자들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토록 강하게 전위적인 음악과 그 권위를 공고하게 만드는 비평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는 이러한 것들이 재즈가 대중에 보급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런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사람들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에 듣기 어려운 재즈/음악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재즈/음악에까지 면죄부를 줄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