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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06. 2024

평소에 잘하지 그랬어

 새벽에 숨이 안 쉬어져 잠에서 깨어났다. 정확히는 코로 숨이 전혀 쉬어지지 않았다. 알레르기 비염이 심해서 한 쪽 코가 거의 항상 막혀 있긴 했지만, 두 쪽이 모두 막혀 숨을 쉬지 못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잠결에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정말 심각한 일인 줄 알았다. 양쪽 코가 막혀 코로 숨 쉬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도 심각하긴 하지만, 내가 말하는 심각한 일은,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한 번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증상을 겪게 되면 별일 아는 것에도 공포를 느끼게 된다. 트라우마까진 아니더라도, '설마 또' 하고 튀어나오는 걱정은 막을 수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증상/통증의 만성화이다.  왼손 삼각섬유연골 복합체 손상이 그러했고, 역류성 식도염, 오른손 가장자리 미세 골절 등이 그러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병원에 가니 코안이 모두 부은 상태라고 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사의 진단에 안심했다. 그래도 여전히 숨은 편히 쉴 수 없었다. 처방받은 약을 먹었고, 생리식염수 스프레이를 꾸준히 뿌려주었다.(잘못 듣고 코 세척기를 사용하다 귀에 물이 찼다) 면역을 길러준다는 부비 찜질팩도 구매해 자기 전 코에 두고 잠들었다. 2주 뒤에 조금 숨을 쉴게 되었다. 의사가 10일 뒤에 코 세척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직 코가 막힌 상태라 코 세척은 여전히 불가했다. 중이염이라도 걸릴까 코 세척은 완전히 나은 뒤 시도 보는 게 좋을 듯 했다. 억울하게도 아침에 면도하다 코 아래를 완전히 그어버렸다. 습윤밴드를 즉시 붙이고 나서(예전에 국립 중앙 도서관 앞에서 횡단 보도를 걷다 넘어져 아스팔트에 얼굴이 긁혔을 때 사두었던 것이었다), '일 돌아가는 꼴하고는'이라고 구시렁거렸다. 정말 일 돌아가는 꼴은 매번 사납다.  

 이래저래 고생 중이다. 이번에도 깨달은 것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도 안 될 가능성이 높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도, 지금 상태인데, 하지 않았더라면 더 괴로웠을 테다. 나쁜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너무 매몰차게 책임을 묻지 말아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나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손바닥에 넣고 주먹을 꽉 쥐어도, 튀어나오고 만다.

  스테로이드 스프레이 대신 생리식염수 스프레이만 주기적으로 뿌려주어도 비염 증상은 충분히 완화된다고 한다. 항생제가 아니니 부작용도 없다. 불안감으로 조급하게 여러 번 뿌려도 문제가 없다. 약사는 건조하다고 느껴질 때 사용하라고 했다. 충분히 촉촉해질 만큼. '촉촉'이라는 발음이 새삼 귀엽게 들렸다. '촉촉'. 건조하게 구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경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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