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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08. 2024

그래서 누구 잘못이라고?

 시간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작업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오류 메시지가 뜬다. 분명 내가 하고 있는 일인데도, 접근 권한이 없다고 팝업 창에 적힌 픽셀 폰트가 말하고 있다. 서체는 문자의 목소리라고 한다. 픽셀 폰트의 목소리는 보나 마나 R2-D2이거나, 달렉과 같을 것이다. 8비트 게임기의 블록으로 된, 사각진 신호음. 무슨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고 할 때, 장비 자체가 작동하지 않으면 투덜거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불평이 튀어나온다. 오디오 인터페이스에서 마이크 소리를 받지 못했을 때, 인식은 되었지만, 녹음은 되지 않았을 때가 그러했다. 코딩을 배우려고 했을 때는 윈도우와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꾸 충돌이 일어났다. 특별한 원인이 있지 않는 한, 실제로 시스템적인 오류 거의 없고, 사용자(나)의 부주의에 의한 경우가 많다. 마이크가 작동되지 않았을 때는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녹음 인식이 불가했던 것은 음악 프로세싱 프로그램에 입력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에 따라 점차 시스템상 결함을 줄어들고 있다. '오류'와 '휴먼 에러'가 동의어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자기 점검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기술 낙관론자는 아니지만 기술 발전은, 고도화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ChatGPT 등장 이후에 정말 평범의 극치인 나라는 사람조차도 일상 속에 AI 기술이 침투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ChatGPT나 Bard를 사용하지 않고 업무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문과에, 유사 공공기관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도 이 정도로 환경 변화를 느끼고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얼마나 더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을지 가늠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다섯 번 이상 반복되는 작업은 자동화할 수 있으며, 자동화되어야 한다. '이건 진짜 자동화할 수 있을 건데'하는 것들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운영 주체의 태도 문제라고 본다. 태도 불량한 사람으로서 태도, 마음가짐을 운운할 자격은 없으니, 이 정도로 그치겠다. 

  조금 전 실수로 윈도우 업데이트 다시 시작을 눌러서, 지금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중이다. 기술 종속적인 삶을 살고 있고, 디지털 전자 우리에 갇혀 있다. 시스템 오류는, 관리되는 안전함에서 벗어날 이유를 상기해 준다. 로딩에 낭비한 4분이 아깝게 느껴졌다. 


테크니컬 라이팅에서 오류 메시지를 작성할 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

1. 사용자가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알려줄 것

2.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줄 것

3. 스스로 해결 방법을 안내해야 할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는 '사용자를 탓하지 말 것'이 있다.

기계 시대에 인간을 수호해 줄 사람들이 있다면, 테크니컬 라이터들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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