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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Jan 13. 2024

마감 기한은 1월 말까지입니다.

 요즘 여러 일로 정신이 없다. 재작년에 운 좋게 팔렸던 이상하게 쓴 글을 EBook으로 내려고 하니, 수정을 원하면 1월 말까지는 완료해서 전달해달라고 PD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냥 버려진 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PD님이 여러 제작사에 제안도 보내주고 하시는 모양이다. 물론 모두 거절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 그렇다고 이 일로 바쁜 것은 아니다. 수정 작업은 어제 받은 요청이었다. 최근에 바쁜 이유는 방 청소와 생존에 필요한 식량(단백질 빵, 닭가슴살) 구매와 창원에 내려가신 부모님 대신 화분에 물주기 등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화분에 물 주기를 제때 하지 못하는 바람에 로즈메리,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식물 정도가 완전히 말랐다. 죄송할 따름이다. 예전엔 식물 키우기를 좋아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잘 키우진 못했다. 잘 죽이긴 했어도. 

 나 외에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다른 생명을 기르는 일에 흥미가 없어 다행이다. 애완 행위에는 모두들 관심 없었으면 한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물은 어느 정도 용인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존재, 혹은 감정이 있다고 여겨지는 존재를 키우는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기적인 행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 주장이 얼마나 호소력 있을지 모르겠다. 

 동물해방운동가들, 자연보호단체들의 기본적인 의식 체계의 바닥에는 '생명은 선하다'라는 명제가 깔려있다. 생명이 존재하는 상태가,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생명'을 지닌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의 부한 상태가 나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러한 환경에서 인간이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자연보호는 '인간보호'를 의미한다.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바쁜 중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애완행위를 싫어하는가 보다.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으니, 손 볼 곳이 수두룩하다. 이건 좀 잘했잖아? 하는 부분을 읽는 재미로 고쳐쓰고 있다. 1월 중순이고, 내일은 휴일 근무를 나간다. 오늘은...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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