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하루를 만회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투고할 원고를 쓰기 위해, 작법에 관한 글과 영상을 보고 있다. 짧은 이야기를 계속 써오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대충하면 긴 이야기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사고는 버린 지 오래다. 사실 이야기만 아니라면, 글은 신문지 접기와 비슷한 행위라고 생각한 편협한 시각은 여전하다. 긴 이야기를 쓰는 데,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은, 단연코 부족한 벌이를 충당하기 위해서이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목적이, 제대로 된 길로 사람을 이끈다.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뤄내는 것은, 인간의 기록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놀라운 성취는 이미 한계 상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취는, 원래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을 끝내는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성취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문장의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일을 쉬지 않고 반복할 수 있는 기량을 기르는 것이다. 글과 거짓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글과 거짓말에 미약하나마 재주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좀 너무 절망적이니까, 그렇다고 쳐주자.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보호이다. 다른 지점에서 관찰된 동일한 현상이겠지만.
잠식당하고 있다. 자본이든, 시간이든, 감정이든, 여유든, 관계든. 피로도 말라가고 있다. 피곤에도 마른 바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역시 끝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끝이라는 벽은 허물기 쉽고, 언제든 무너진다. 손에서 미끄러져 냉장고 앞에서 우유를 쏟는다거나, 칼날을 반대로 한 채로 양파를 썰다, 손을 베이거나 하면, 씩씩거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분노케 하는 건, 조금만 신경 썼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는 점이다. 얄팍한 자책을 하루에도 수십 번 한다.
나는 나로 살고 있고, 결국 내 삶은 나로 끝날 것이다. 나는 결코 나의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고, 나의 밖과 안에도 나만 남아 있을 것이다. 죽음이 두렵고, 삶은 잔인하다. 막힌 곳에 탈출구를 작은 쥐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완전히 소멸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지루한 경기가 계속된다.
신발 끈을 고쳐 묶는다. 자주 풀리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