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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휘목 Feb 04. 2024

애타게 닳기 위해


 부스러기를 만드들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는 샘솟는 게 아니라,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로 전환되듯, 낙하할 때 발생한다.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설계가 우선해야 한다. 어느 날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진 않는다. 자신을 믿는 것보다 환경을 믿는 게 낫다. 흔히 책상 정리부터, 이불 개기부터 시작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비록 책상을 정리하거나, 이불을 개진 않지만, 머릿속 작업실의 책상은 정리하고, 이불은 갠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이미 글러 먹은 정신 태도이다. 그래도 엉망인 방안에서도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평가한다. 

 연필과 지우개는 사라짐으로써 제 할 일을 다하는 존재로 유명하다. 흔히 비유로도 쓰인다. 인간도 자신을 연필처럼 들고, 어디라도 슥삭 끄적이거나, 지우개처럼 뭐라도 문질러야 사라지기라도 한다.

  향 피우는 일을 한 적이 있는데, 향이 타면서 나는 재가 폐에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누군가들을 조금 더 이르게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건 아닐까,걱정되었다. 어차피 인간은 엄밀하게 말해서, 아주 느린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언젠간 기술 발전으로 불멸의 삶을 쟁취한 인류가 나타날 것이고, 아주 느린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는 감각은 오래된 유물처럼, 박물관에 가서야만 느낄 수 있을 테다. 불멸의 인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애타게 무엇을 원할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들이 무엇을 애타게 원한다면, 그건 죽음을 전제로 한, 현 인류의 간절함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띠고 있을 것이다. 

   죽음이 인간을 가치 있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닳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것뿐이다.

다른 건 소꿉장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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