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를 듣던 중에 진동이 울렸다.
상무의 전화였다. 당장 밖으로 나갔다. 큰일이 아니면, 퇴근 후에는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다.
보내준 시안에 오류가 있었다. 이건 분명히 서란의 책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왔던 그대로 회사로 돌아갔다. 바에서, 피아노 앞에 앉아 카푸스틴을 다시 쳐본 게 꿈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한밤에 사무실에 혼자 남아 누락된 정보를 수정하는 일이 고되지 않았다. 이것도 비현실적이었다. 현실이 아닌 곳에선, 스트레스도 무력했다.
작업을 마치고, 수정본을 전송했다.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희극적으로 읽혔다. 막차도 끊겼다.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것도, 일이었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클라이언트 쪽이 먼저 박살 난다는 조건 하에.
생각하는 거 하고는. 못 됐어 정말. 인성 역주행한 거. 인정
서란은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가, 키득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 한숨 돌리기 위해 휴게실로 갔다. 조금은 더 행복했었던 것 같았다. 음악 속의 자신은.
눈을 감았다. 아침보다 찬란한, 선율이 나비가 되어 날개짓했다. 좋은 것들은 너무도 빨리 사라져 버린다. 오늘의 기억이 지나치게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팔목이 가볍게 느껴졌다.
아, 피아노 치고 나서 두고 왔다. 팔찌.
아니시나베족 친구가 만들어 준 진짜 드림캐쳐인데,
오늘 꿈자리 한번 사납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