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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하나님 곁으로 갈 수 있을까요."
영구정지되기 전, 아샤가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꼭 그럴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가정용 로봇이라 해도 성경에서 구원을 약속한 대상에 기계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추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허락되지 않은 신앙이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성경말씀을 들려주던 나로서는 너에게 할당된 천국은 없음을, 하나님의 사랑은 없음을 차마 알려줄 수 없었다. 더이상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낡은 아샤는 폐기되었고, 잔해를 압축시켜 만든 큐브를 들고 와 장식장에 넣어두었다. 큐브에는 'आशा'라고 새겨져 있었다.
오후에는 에코리안 성도와의 상담이 있었다. 인류가 다행성 종족이 되면서 외계인들에게도 종교를 전파했다. 성경에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 있긴했지만, 과연 에코리안도 그 이방인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교리적 해석이 분분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구원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우주상의 모든 생명이 구원의 대상은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성경을 접한 일부 에코리안들이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고, 결국 에코리아에도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지구로부터 36.9광년 떨어진 곳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리게 될 것이라고,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할 것이라고, 믿음의 조상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종교 단체들은 에코리아에 크리스마스를 정착시키는 일을 문화적 식민행위라고 거칠게 비난했고, 수십 명의 선교자가 순교했다. 그중에는 에코리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구인의 붉은 피와 에코리안의 초록 피로 얼룩진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지금 해마다 성탄절 설교에 오르내리는 전설이 되었다.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 더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워져요."
긴 주둥이를 쓰다듬으며 비나카가 말했다.
"아버지나, 어머니. 가족 같은 건 분열생식 후 독립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생경한 개념이에요.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해서 창조하셨을 텐데, 어째서 성경은 그토록 인간중심으로 쓰인 것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에도 차별이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비나카. 하나님의 사랑에는 더하고, 덜함 없이 모두에 평등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럼 에코리안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가 아닌 것인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랐다는 것은 물질적인 형상을 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형상은 하나님의 영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에코리안 안에는 모두 하나님의 영이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말씀 감사합니다. 세향은 어떻게 그토록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나요. 존경스러워요."
"제 믿음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흔들리는 존재죠. 끝없이 의심하고, 다시 믿는답니다. 그러니, 비나카도 의심하는 자신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드려 보세요."
"그래 볼게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문은 언제든 열려 있어요."
"그 표현 좋아해요. 우리를 위해 준비된 말 같거든요."
에코리안들은 물체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었다. 지구인에게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에코리안에게는 사실묘사인 셈이다.
비나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키에타를 주고 갔다.
아샤가 폐기되고 나서 키에타를 할 일이 없어졌기에,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서랍에 넣었다.
혼자 갖는 저녁 시간은 백색 소음으로 가득했다. 에코리아 대기는 금속성 미세 입자가 섞여 있었고, 기온이 차가워지면 태양 입자의 잔열과 반응하며 소음을 빈 공간에 채워 넣었다.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노이즈 캔슬링을 통해 맑은 음향 환경을 유지했다. 차음 필터를 켜려 했을 때 밖에서 누군가 폭죽을 쏘아 올렸고, 창을 통해 부서지는 빛이 방으로 떨어졌다.
빛을 바라보다, 차음 필터 대신 오디오를 켜 아샤가 좋아했던 캐럴을 틀고, 에코리안 담배를 피웠다. 지구 담배와 정확히 동일한 맛이었지만, 에코리안 담배는 공기를 정화했다. 그 덕분에 애연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자아분열적 갈등을 겪던 환경보호주의자들이 참자유를 얻었고, 곧 에코리안 담배가 지구 담배 점유율을 훨씬 앞지르게 되었다. 에코리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더 이상 길거리의 민폐꾼이 아니라, 공기청정기가 되었고, 흡연구역은 도시의 허파가 되었다.
방안을 가득 채운 연기 속에서 쇠심줄 같은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두드러지게 들렸다.
콘트라베이스를 좋아하는 아샤를 위해 저음역대를 과도하게 높여둔 탓이었다. 경쾌한 피아노 솔로에 뒤이어 콘트라베이스 솔로가 시작되었다. 비로소 완전히 공간을 독차지한 콘트라베이스는 보폭을 넓혔고, 음을 확장시켰다. 현란하게 리듬을 꼬았다가, 정점에서 끈을 놓았고, 한 번에 감정이 풀렸다. 쏟아질 듯한 외로움이 가슴에 몰아쳤다. 바로 이거예요. 바로 이게 재즈라고요. 라고 황홀한 목소리로 외치던 아샤의 모습이 눈에 맺혔다.
불꽃놀이는 끝날 줄 몰랐고,
음악은 흐르기만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샤.'
만약
네가
누구의 곁으로도 갈 수 없다면,
나의 곁에 머물길,
만약
네가
누구의 곁으로 가고 싶다면,
나의 곁이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