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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

신채호, 조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논하다.

by 펠릭스

프랑스의 역사가 랑케는 과거의 기록이나 유물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오직 객관적 사실로만 역사를 구성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과거의 기록, 유물, 유적 등을 포괄적으로 역사적 자료, 줄여서 ‘사료’라고 합니다. 랑케는 이러한 사료에 바탕을 둔 객관적인 역사를 강조하였고 역사가는 사료를 전달해주는 사람이지 자신의 주관적인 해석을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랑케는 근대 역사학을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랑케의 접근법은 분명 어떠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 사료를 검증하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완성되지 않지요.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오늘은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을 알아보면서 역사가의 해석이 역사에 어떤 의미를 불어넣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족으로 신채호가 한 명언이라고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실제로 그가 한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신 신채호는 어쩌면 잊힐 수 있었던 고려 시대의 한 역사적 사건을 사람들에게 소개합니다.


신채호는 자신의 책 『조선사연구초』에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년)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서경은 오늘날 평양지역을 말하고, 천도라는 것은 수도를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묘청은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 스님이었지만 풍수지리에 밝아 당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오늘날 개성)이 땅기운이 다하였다고 주장하며 서경으로 수도를 옮기기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고려 귀족들의 반발로 서경 천도운동이 좌절되자,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은 내부 분열로 실패로 돌아갔고, 소위 말해 패자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신채호에게는 이 사건이 단순히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서경 전역 전역을 역대 역사가들은 다만 국왕의 군대가 반란군을 친 전쟁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그 실상은 이 전역이 낭불 양가(郎佛兩家)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國風派)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 사상 대 보수 사상의 싸움이었다.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역사는 사대적⋅보수적⋅속박적 사상, 즉 유교 사상에 굴복되고 말았다.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이겼다면 조선사는 독립적⋅진취적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1000년 동안의 제일 대사건이라 하지 않겠는가?

『조선사연구초』


신채호라는 역사가는 당시 주권을 빼앗기고 식민지가 된 현실에서 느낀 자신의 주관에 서경천도운동이라는 역사적 사료의 의미를 더해 하나의 역사서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묘청은 진취적 사상을 가지고 서경을 거점으로 하여 당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중국의 금나라를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보수적인 주장을 하였던 귀족들이 승리함으로써 고려는 후에 금나라에 사대하였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신채호는 이때 묘청이 승리하여 고려가 서경으로 천도하여 금나라에 맞서는 진취적인 역사로 흘러가였다면, 조선의 역사도 사대적이고 보수적인 방향이 아닌 독립되고 진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지금처럼 식민지가 되었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을, 천년 동안 있었던 일 중 가장 중요한 일로 해석하였지요.



약 천여 년 전, 반란과 패배의 역사가 한 역사가에 의해 전혀 다른 새로운 역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채호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과 맞물려 '왜 조선이 식민지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서경천도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가져와서 답을 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객관적 사실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가 객관적 사실에 주관적인 해석을 더해 탄생한 것이 역사입니다.



저는 이번 글을 조금 징검다리와 같은 느낌으로 썼습니다. 역사적 인물에 관하여 글을 쓰면서, 과연 내가 전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스스로 자문하면서 역사의 본질에 대한 물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 역사란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가 익명의 역사가가 될 수 있고, 자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 인물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하여 전하는 현재 우리 삶의 의미와 방향을 제 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시금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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