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다가온다.
일 년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더 이상 산타의 선물을 받지도 않지만
‘성탄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설렘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산타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떠올리는
아주 약간은 더 성숙한 크리스천 어른이가 되어 간다.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도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대부분의 꼬마 아이들처럼
산타의 선물에 온갖 관심을 쏟는다.
우리 꼬마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한해의 절반은 산타를 기다리며 산다.
어제 아이가 학교 돌봄교실에서
산타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카드를 만들어 왔다.
아이의 카드는 생각보다 건전했다.
이 선물, 저 선물을 달라는 이야기 대신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런 카드라면,
없는 산타도 굴뚝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아서
트리 밑에 다른 장식품들과 함께 잘 두었다.
가뜩이나 산타 놀이를 좋아하는 남편과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실존 인물로 믿고 있는
아이를 위해서 더욱 실감 나는 산타 선물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24일 밤,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시간이 된다면 영화도 한편 나누어 보고
아이들을 일찍 잠자리에 들게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약 20일 전에 사두었던 산타 선물을 포장하고,
그럴듯하게 ‘영어로’ 산타로부터 온 편지를 적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눈과 사진으로 남긴다.
아직은 아이들이 산타를 믿게 하는 것이 즐겁다.
나의 어릴 적 엄마, 아빠가 그러했듯이
최대한 진짜 같은 산타가 되려고 노력한다.
90년대 초반,
언니와 나에게 산타의 존재를 오래도록 믿게 하시려고 엄마 아빠는 온갖 노력을 기울이셨다.
그야말로 ‘산타력’을 키워가셨다.
산타할아버지 선물의 첫 시작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가 알쏭달쏭 해질 때쯤의 선물들은 또렷하게 기억이 남는다.
산타의 선물은
성탄절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언니와 나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쩜 그렇게 소리도 내지 않고 선물을 두고 가시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집엔 굴뚝도 없는 일반 아파트인데
현관을 열고 오시는 건지,
뒷베란다로 오시는 건지 정말로 궁금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아이들의 집으로 다 찾아가시는 건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도무지 나의 계산식으로는 이해를 해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산타 할아버지는
우리가 정말로 갖고 싶었던 선물을
정확히도 잘 맞춰내셨다.
서로 야무지게 닮은 우리 자매가
나란히 누워 자고 있으면
한 번쯤은 헷갈려서 선물을 잘못 둘 법도 한데,
산타 할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셨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그리고 언니가 5학년이 되던 해,
12월 24일의 아주 깊은 밤 -
우리 자매는
산타의 방문으로 추정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어릴 적, 유난히 성탄 이브의 밤엔
우리들을 일찌감치 이불속으로 밀어 넣으시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올 나이트 같은 것도 해보고 싶고,
영화에서처럼 신나게 놀다가 잠이 들고 싶었다.
그리고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면 꼭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탄 전야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재빠르게 샤워를 해야 했다.
그리고 엄마의 말처럼
‘우리가 밤늦도록 잠들지 않는 바람에
산타가 우리 집을 지나쳐가지 못하도록’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나의 초등학교 3학년 성탄 이브의 밤은
산타에게 진심 어린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날이었다.
엄마가 꺼내 주신 레이스가 잔뜩 달린 잠옷을 입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언니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일단 오늘은 자는 척만 하자고,
그리고 산타를 꼭 만나자고....’
시간이 흐를수록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겁게 내려앉았고
언니와 나는 잠들지 않기 위해
이불 밑에서 한참을 소곤거렸다.
그러다가, 잠이 든지도 모른 채
두 눈을 오래도록 감고 있었다.
꿈결에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리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엄마 아빠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엄마 아빠가 현관 앞에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게 틀림없었다....!!!
몸을 일으켜서 아는 체라도 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고
다음날 아침,
우리 자매의 머리맡엔 산타의 선물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일 년 후,
우리는 친구들과의 심도 있는 대화와
주변의 영향으로 산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포기를 모르는 분들이셨다.
그들의 산타력은,
그. 야. 말. 로. ‘끈질김’이었다.
그해의 성탄 이브 저녁에는
성탄 행사가 끝난 후,
교회에서 가깝게 지내는 세 가족이 한집에 모여
저녁 시간을 보냈다.
딸만 둘씩 있는 집들의 모임이었다.
그렇게 모이면 딸만 여섯이 되었다.
언니 동생과 이방 저 방을 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현관 벨을 울렸다.
문이 열렸고,
동화책에서 수도 없이 봤던 빨간 옷을 입은
수염이 주렁주렁 달린 커다란 사람이 서 있었다.
산타는 성큼성큼 집으로 걸어 들어왔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우리들의 이름을 나이 순서대로 불러 선물을 안겨 주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순서였고,
올해도 예상에서 빗나감이 없는 선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산타 할아버지와 기념 촬영을 했다.
마음속에는 대 혼란이 일어났다.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 건 기뻤지만,
정말로 산타는 없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나타 나신 걸까? 하는 질문부터 시작해-
끝없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채웠다.
그야말로 ‘산타 대혼란’의 밤이었다.
그렇게 일년의 더 보내고 나서야
엄마 아빠의 산타 대행 업무를 완전히 눈치채게 되었고,
12월이 돌아오면,
갖고 싶은 선물을 미리 공개하며
“꼭 사주세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수년간 007 작전으로 산타력을 발휘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의 성탄절은 늘 기쁨과 신비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따뜻한 추억들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성탄절은 따뜻하고 행복한 날로 여겨진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산타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우리 꼬마들에게도 부지런히 행복을 전달하는 중이다.
아이들이 산타의 존재를 밝혀내는 그날까지,
나의 엄마, 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겨울날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오래오래 선물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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