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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도시락 담는 엄마의 진짜 마음.

by 다니엘라

추운 겨울을 맞으며 시작된 큰 아이의 겨울방학.
지난여름을 떠올리며 다시 도시락을 싼다.
보통의 아이들은 등교를 하지 않는
즐거운 겨울방학이지만,
엄마가 일을 하는 우리 아이는
돌봄 교실로 여전히 등교를 한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
아이가 물어왔다.
“엄마 돌봄 교실 안 가는 방학은 언제예요?”
“음... 방학...(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너는 방학 없는데...”
하는 말을 주워 담기가 무섭게 말머리를 돌렸다.
“이삭아, 다음 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방학하자!”
짤막한 순간,
동생의 방학기간에 맞추어
첫째 아이에게도
자체적으로 방학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며칠간 두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고,
휴가를 내가며 아이들에게는 달콤하고
나에게는 살벌했던 겨울 방학을 보냈다.


그리고 새로운 월요일,
아이는 평소와 같이 돌봄 교실로 등교를 시작했다.
방학 시즌이라서 평소와 달리
아이는 엄마의 도시락을 챙겨 등교를 한다.


첫 도시락을 싸며 열정을 불태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다신 그렇게 못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나는 또 새벽같이 일어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글을 한편 써내고,
도시락 노동자로 변신한다.


눈뜨자마자 도시락에 넣을 밥과 아이들의 아침상에 올릴 밥이 남아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고, 되도록이면 새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서 보내려고 한다.
(반찬도 변변찮은디, 새 밥이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보태며...ㅎㅎ)


여름엔 아이가 고른 ‘라이언’ 캐릭터가 그려진 도시락에
고민 없이 밥과 찬을 담아 보냈다.
그런데, 도시락 노동자가 되고 나서 첫겨울을 맞으니
당최 어떻게 밥을 싸줘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스텐 도시락 통에 담으면 가지런해 보여서 좋고,
아이가 먹기 쉬울 테지만
점심시간 때쯤이면 밥이 차갑게 식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코끼리 보온 도시락에 싸 주자니
아이 아빠가 쓰던 거라 크기도 코끼리 만하다.
아이가 아무리 잘 먹는다 해도 이건 좀 무리다.


반찬 정리함을 뒤적거려
두 아이의 이유식 용기로 썼던 보온 통을 찾아냈다.
크기도 적당하고 도시락 주머니에도 쏙 들어간다.
이유식 할 때 눈물을 머금고 제일 좋은 것으로 사두었더니
뒤늦게 빛을 발한다.


사실은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이 보온 통도 여러 번 버려질 위기에 처했지만,
늘 폐기 면제를 받았었다.
비싸게 산 것 치고 아직까지 본전을 뽑을 정도로
사용을 다하지 못했고,
디자인이 귀여워 쉽게 휴지통에 넣질 못했다.
이래저래 고민하는 틈에
여러 차례의 ‘우리 집 물건 정리해고’의 칼바람 가운데서도
살아난 보온 통이다.
밥통은 너로 정했다!


그리고 반찬통은 시원하게,
지난여름처럼 라이언 스텐 도시락에 그대로 담기로 했다.
도시락 가방이 보온/보냉의 기능을 가졌으니
미약한 온기라도 남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서...


나름의 도시락 월동 준비를 마치고
다시 도시락을 싸는 엄마가 되었다.
도시락 노동자가 되기 일주일 전,
아침마다 도시락을 쌀 생각에
걱정을 산더미로 쌓아두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막상 도시락 마라톤 첫날이 되자.
형편에 맞게!
시간에 맞춰!
휘리릭 마법을 부려 제시간에 도시락을 완성해냈다.


길지 않은 새벽시간을 쪼개서 도시락을 싸려고 하니
처음에는-
(아주 솔직히)’내’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 시간이면 글을 더 쓰고, 책도 읽을 텐데..


그런데 역시나,
도시락 통을 꺼내며 찌든 때 가득했던 내 마음속은
새하얗게 자동세척이 되었다.
도시락 통을 집어 들자,
어느새 사랑 넘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영양과 맛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도시락을
완성해 내고 있었다.


도시락을 만들어내는 그 시간만큼은
큰아이 얼굴만 떠올렸다.
아이가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면
하늘의 별님이라도 따서 반찬으로 넣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도시락의 마무리는 아이 마음의 반찬인,
엄마의 사랑을 담은 메모를 넣었다.


벌써 도시락 노동자 2주 차를 맞이 했다.
여전히 반찬 고민에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가는 게 보이지만
하교하는 아이가 도시락을 싹싹 비워오는 것을 보며
다시금 팔뚝을 걷어부친다.


오늘도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며
글을 마무리하고
도시락을 쌀 준비를 해야 하지만,
큰 아이 얼굴을 그리며
엄마 노릇을 하는 이 시간이
사실은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모두 다 사랑 덕분이고,
아이들 덕분이다.


오늘은 아이가 좋아하는
용가리 치킨을 반찬으로 담아줘야겠다.


같이 보면 좋은 글.

https://brunch.co.kr/@felizdani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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