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출은 늘 뜀박질과 함께 시작된다.
매일매일 뛰고 또 뛴다.
운동을 좋아해서일까?
체력 단련에 대한 목표가 있어서일까?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발이 근질근질해서 일까?
그럴 리가요...
현관을 나서면서부터 뛰어다니는 이유는
늘 시간에 쫓겨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약속 시간 + 뜀박질 시간을 대충 계산해서
헐레벌떡 집을 나서는 습관 때문이다.
매일 아침,
작은 아이의 등원차량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선다.
10분 전에 나서면 아이들과 여유롭게 걸으며
대화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늘 5분 전에 집을 나서서 뛰고 또 뛴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큰 아이에게는
“이삭아, 천천히 와~!”
이게 무슨 말인지 방귀인지.
엄마는 죽어라 뛰면서 분리불안 국가대표급인
첫째 꼬마에게 천천히 따라오라는 말이 들릴 리가 있나.
앞에선 작은 아이를 들쳐 안은 내가 뛰고
뒤에선 첫째 아이가 엄마를 쫓아 열심히 달린다.
5분 전에 집을 나선다고 해서
등원 차량보다 항상 늦는 건 아니다.
차량도 매일 아침 상황에 따른 변수가 있기에
때론 우리가 먼저 도착하기도 하고,
다른 때엔 아파트를 들어서는 차량과 마주치기도 하며,
한 달에 한두 번쯤은 우리가 늦기도 한다.
아이를 데려다주며 돌아오는 길엔
의미 없는 결심을 반복한다.
‘내일은 꼭 10분 전에 우아하게 걸어 나와야지.’
가끔은 계획대로 움직여져 10분 전에
집을 나서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머리를 감고 덜 말린 내 머리가 산발이 되어 있거나 외투를 못 걸치고 나오기도 한다.
우리의 외출에는 뜀박질이 함께 하거나
우아한 걸음걸이 뒤에 엉성한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아침마다 부지런한 동네 주민분들께
‘저 이렇게 정신없는 엄마로 살아요.’
하며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아
종종 쑥스러워지는 바람에
뜀박질 습관을 고치려고 애를 쓴다.
그럼에도, 근 30년이 넘은
고약한 습관을 고치기란 영 쉽지가 않다.
기억을 더듬어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대학 1학년 첫 단체 미팅 자리였다.
외국어 전공의 우리 학과는 여학생들이 넘쳐났기에,
수완 좋은 선배의 주선으로
남학생들이 드글거린다는 H대의 공대생들과 단체 미팅의 기회를 얻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단체 미팅을 드디어 나가게 되었다.
외모는 날 때부터 정해진 거라 여학생들 중에서 가장 예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이미 물 건너갔고,
그날은 가장 다소곳해 보이는
여학생 이미지를 남기기로 결심을 했다.
몇 벌 안 되는 옷 중 고르고 고른 파스텔 톤의 원피스와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기숙사를 나섰다.
강남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낯선 서울 지리를 감안하여 조금 더 일찍 나섰어야 했는데,
그날도 시간을 빠듯하게 책정해버렸다.
강남역에 도착하니 거의 약속시간에 임박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약속 장소까지,
‘걸어서’ 가면 완전히 지각을 하게 될 터였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입학식 이후 처음 꺼내 신은 딱딱한 구두의
뼈아픈 착용감을 그대로 흡수하며
강남역 (구)6번 출구에서 교보 문고 방향으로
전.속.질.주.를 했다.
숨도 채 고르지 못하고 약속 장소에 들어서니
어두 컴컴한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테이블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단체 미팅석이었고,
줄줄이 비엔나처럼 앉아있는 동기들은
하나같이 작정이라도 한 듯
다소곳함을 뿜뿜거리고 있었다.
머리와 얼굴에 땀으로 칠벅을 하고 들어선 나는...?
다소곳함은 일찌감치 버렸다.
다소곳함은커녕 땀냄새라도 풍기지 않았길 바란다.
밥이라도 잘 먹고 들어가자 싶어
똑같이 배정받은 돈가스를 맛있게 먹어 치웠고,
소지품을 꺼내 짝꿍을 정하는데도
가방에 굴러다니던 까만색 볼펜을 대충 내밀며
모든 것을 운명에 내맡겼다.
그 뒤는 기억이 나지도 않고 기억을 하고 싶지도 않다.
특징 없는 여대생과 남대생이 만나 어색함을 물리치기 위해 음료수만 대충 한잔 마시고 헤어졌겠지.
정말이지 남학생의 얼굴이나
그 친구와 뭘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단체미팅은 그 날의 경험으로 족했다.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졸업하는 날까지
두 번 다시 단체미팅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땀을 칠벅을 하고 뛰어다닌
속 쓰린 경험은 여러 번 있었지만,
빠듯하게 나서는 습관만큼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애 둘을 낳고도 여전히 뛰어다니니,
습관이 얼마나 끈질긴 건지 따로 설명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럼 대체 왜 이런 습관이 생긴 걸까?
습관이 정착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곰곰이 짚어본다.
처음에는 ‘내가 성격이 급해서 뛰어다니는 건가 보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성격이 급했으면 일찌감치 뛰쳐나왔어야지 빠듯하게, 혹은 느지막이 나와서 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보니,
그동안 너무 내 시간만 소중하게 여긴 것이
나를 여태 정신없이 뛰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릿속엔 집을 나서기 전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 담겨 있다.
책을 한 장 더 읽고 집을 나서고 싶고,
널려 있는 빨래를 조금 더 잘 정리해놓고 나서고 싶고,
책장에 책들을 더 가지런히 세워놓고 나서고 싶으며,
읽고 싶던 브런치와 블로그의 글들을 더 읽어놓고 나서고 싶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시간을 조금씩 미루다 보면,
약속시간에 임박해서야 긴급성을 느끼고 집을 나선다.
약속 시간은 지키고 싶고,
집에서는 빠듯하게 나왔고,
나에게 남은 것은 ‘뛰어가기’ 옵션뿐이다.
그렇게 나의 뜀박질은 시작된 것이다.
습관성 뜀박질에 대해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진짜 원인을 밝혀냈다.
이전에는 원인을 밝혀 낼 마음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살면서도
내 시간만 금인 줄 알았지,
다른 사람의 시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내 시간 10분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 무게를 더 실어두지 못했음이 영 아쉽다.
지난 시간은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습관을 바꾸어 나가보려 한다.
딱 10분만 더 일찍 나가 보기로.
책은 나가서 읽어도 괜찮고,
블로그 글도 밖에 나가서 읽으면 더 운치 있다.
그리고 가끔은 멍하니 딴생각을 하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십 년을 뛰어온 뜀박질 쟁이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가 없다.
오늘부터 평소보다 그저 딱 10분만 일찍 나가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습관은 이렇게 작은 한 걸음씩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