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에 대한 단상.

by 다니엘라


‘기혼’이 아줌마가 되는 필요조건이라면,
나의 아줌마 라이프는 벌써 8년 차.


몇 년 전,
아이를 안고 가는데 뒤통수에 대고
“저기요, 아줌마!” 하셨던
얼굴에 수십 개의 주름이 아로새겨진
버스 기사님의 얼굴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아, 왜요 왜? 저한테 왜 그래요?ㅠ’


따지고 보면,
애 안고 가는 여자에게 ‘아가씨’라고 할 순 없지 않나?
그 남성분은 사회적 위치를 잘 고려해 나를 불렀을 터.


그럼에도 인생의 첫 경험에는
뭐가 되었건
지독하게 쓰거나
지독하게 달콤함이 뒤따르는 법.


‘아줌마’는 지독히도 쓰라렸다.
대체 내가 왜? 아줌마인 거지?
아줌마라는 단어에
늘 ‘억척스러움’을 갖다 붙여서 생각하던 내가
스스로 아줌마의 카테고리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세상사가 늘 그러하듯
첫 경험은 쓰라렸지만,
그 단어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츰, 아줌마라는 단어가 주는 자신감과
아줌마 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줌마 인증식을 하곤 한다.


#오늘도 #나는 #역시 #아줌마다.
라고 느껴지는 순간들.


(주로 가격조절이 가능한 관광지에서)
물건 또는 서비스를 고르고 가격을 묻는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뒤돌아서 가는 척을 한다.
“어머! 저 그 가격이면 그거 못 사요!!!”


엘리베이터를 탄다.
자주 마주친 꼬마를 만난다.
“그래 안녕, 너 이제 몇 학년이니? 어머나 벌써?”
몇 개월 후 그 꼬마를 또 만난다.
“그래 안녕, 인사 잘하는구나. 너 몇 학년이랬지?
그래 맞아. 어휴 진짜 빨리 큰다 너희는.”
몇 주 후 또 비슷한 패턴의 대화.


아이들과 놀이터에 간다.
또래 친구들의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께서 친근하게 다가오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리고 나는,
손뼉을 짝짝거리고 공감하며 웃는다.
가끔은 뒤로 넘어가며 웃는 시늉도 한다.
동네 할머님들께서 날 이뻐하시기 시작한다.


아이의 학원 차량을 기다린다.
자주 마주치는 같은 태권도 학원 꼬마를 만난다.
갑자기 말을 건다..
“오늘 날씨 추운데, 일단 재킷 지퍼라도 올려서 입어~
감기 걸리겠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그리고 아줌마 내공이 깊어질수록
나의 마음도 넉넉하고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거울 속의 내 얼굴만 바라보던 처녀시절을 지나,
다른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다른 자녀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정이 담긴 말들을 건네게 된다.


지금은
실수로 불러주는 ‘아가씨’라는 말 보다,
또 다른 따뜻한 이가 불러주는
‘아주머니, 아줌마’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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