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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Jan 27. 2021

임계장 이야기

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조정진 ㅣ 후마니타스


오래 오래간만에 단숨에 읽어 내린 책이다.
아침에 집어 들고 짬짬이 읽다가,
아이들이 잠든 밤에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듯
책을 한 권 집어삼켰다.


이 책과의 만남은 [마녀엄마] 책에서 비롯되었다.
수많은 책들이 [마녀엄마]의 책 속에 소개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읽어보고 싶던 책이
바로 [임계장 이야기] 책이었다.


저자는 38년 간 공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고 60세의 나이에 퇴직을 한다. 책의 서두에 퇴직을 한 그의 ‘재정적 현 상황’을 나열해 두었다.
- 아빠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앞을 가렸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가슴을 쓸었다.


저자는 퇴직을 하고 일자리를 찾았다.
퇴직하고 보니 녹슨 훈장에 지나지 않는 그의 경력들로
사무직으로 일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어렵게 친척의 연줄로 들어간 회사에서 그는 깨닫는다.
나이의 벽이
신입으로 입사한 그가
사무직 근무를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는 사무직 업무를 포기하고 날마다 구인광고지를 들여다보며 새 직장을 찾았다. 그러다 어느 작은 고속회사의 배차 계장으로 취업을 하게 된다.
구인광고에서 ‘근골격이 좋으신 분’을 요구하고 있었고 60세의 그는 고속회사에서 ‘딱 좋은 나이’로 인정받으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터에서 그는 임계장으로 불렸다.
임 씨가 아닌데 임계장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주변에 물어본다.
그랬더니 ‘임시 계약직 노동자’의 줄임말이란다.
졸지에 계장 타이틀을 달았으니 그리 싫지도 않다.
그렇게 그의 임계장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두 세 사람이 해야 할 몫의 일을 혼자서 감당해 내야 했다.
몸을 써서 탁송 물건들을 차에 싣고 내렸으며,
차량 배차와 제반 업무를 혼자서 돌보게 되었다.
사실상 혼자 해내기엔 불가능한 업무량이었지만, 그는 늦은 밤 집에서도 정비회사, 운전기사와 삼각 통화를 하며 다음날 정확한 배차를 위해 애를 썼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짐을 옮겨 싣다가 짐칸 뚜껑에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지게 된다.
머리와 허리의 치료를 위해 사나흘을 쉬어야 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날로 해고를 통보한다.


임계장의 삶은 그런 것이었다.
근골격이 성하지 않으면,
그것이 업무상 상해를 입은 것이더라도
일터를 떠나야 한다.
회사가 임계장에게 해주는 것은
최저 시급으로 책정된 월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임계장은 다음 일터로 아파트 경비직을 구하게 된다.
2교대 근무인 아파트 경비직을 하면서는 근처 빌딩의 경비일까지 겸업을 하게 된다.
쪽잠을 자며 24시간을 온전히 쉬지 않고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슈퍼맨이 아닌 그가 그 일을 다 어떻게 감당해 낸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1년 여간 그렇게 일터에 머무르다 임계장이 자치회장의 눈밖에 난 사건으로 경비직을 내려놓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속터미널 보안요원으로 근무를 하게 된 임계장은 야간 근무 후 퇴근을 하다가 쓰러지게 된다.
병명은 척추 감염.
면역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세균이 척추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의지력 하나로 무리해서 일을 해 온 결과였다.
결국 마지막 직장도 그렇게 밀려나듯 떠나게 된다.


우리 시대의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현실이다.
이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우리가 맞이할 수도 있는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나는 사람은 나의 아빠였다.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시던 중 빚보증을 잘 못 선 탓에
빚을 갚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시고,
변호사 사무소와 보험업 그리고 병원 경비,
지금은 건축업까지 넘나들고 계신다.
지난 이야기를 전해 들은 거지만,
최근 몇 년 전에는 엄마와 아빠가 밤늦게 집을 나서서 대리운전 업도 하셨었다고 하신다.
잘 모르고 지나쳤던 그때가 참 죄송하고,
마음이 많이 아프다.
언젠간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덤덤히 풀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는 시간 내내 마음이 저렸다.
그 누구도 악하고 싶어서 악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시 계약직 노동자에게 갑질을 해대는 사람 역시
누군가의 갑질을 견디고 있는 것일 테고
각자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뿐일 테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여전히 씁쓸하고 아프다.


점차 고령화되어가는 사회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따뜻하게
그리고 잘 굴러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한 살이라도 젊은 우리들에게 남은 과제이다.


책을 집어 든 날 저녁,
책을 읽다 말고 고구마를 쪘다.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경비실로 향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지만,
주변의 또 다른 내 아버지들인 경비 아저씨게 친절을 베풀고 감사를 표하는 일, 그것 하나만큼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친절을 전하고, 얼굴을 뵐 때마다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려고 한다.


지난해 여름이 채 되기 전
이 책의 저자분께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안타깝게 생각하고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임계장’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사회가 더 따듯해지길 바라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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