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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하늘 아래 쉬운 이별은 없는 법.

by 다니엘라


‘이별’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가?
나의 경우는
눈물, 절제, 견딤, 축복, 새 출발 정도의 단어가
작은 조각이 되어 머릿속을 동동 떠다닌다.


눈물 없이는 힘든 것이 이별이고,
그럼에도 그 슬픔을 절제하며 견디는 편이고,
이별의 대상을 축복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훌훌 털고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준비한다.
사람과의 이별이든
사물과의 이별이든
혹은 상황과의 이별일 때도
이별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인다.


그렇다면,
이제 막 아홉 살이 된 아이에게 이별이란 어떤 걸까?
아이의 수많은 이별을 들여다보았다.
속은 정확히 몰라도
겉으로 드러난 아이의 이별을 지켜보니
아직까지는 사람보다는 사물과의 이별이
더 어렵고 고통스럽게 보인다.
아마도 아직까지는 아이 인생에 정말로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는 작은 장난감을 잃어버려서
예상치 못한 이별을 하게 될 때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한참을 바라보며 갖고 싶었던 물건과 이별할 때도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좋아하는 물건을 동생이 망가뜨렸을 때도
아이는 원망 섞인 눈물을 쏟아 냈다.
그리고 잠시 소유했던 것과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에게 이별은 ‘눈물’이었다.


아이는 얼마 전 ‘밀*티’라는 온라인 학습지를 체험했다.
서점 구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그곳에 들를 때마다 영업직원 분들께서 체험학습을 권했지만 늘 거절하곤 했었다.
아직은 학습지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탭(갤럭시탭)을 이용한 미디어 기반의 학습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전 서점에 들렀을 때도 학습지 영업 사원 분들이 체험을 권하러 다가오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칼에 거절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설명을 들어 보았다. 미디어 학습이라는 것이 대체 어떤 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도
이미 스마트 학습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도 이와 유사한 스마트 학습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 학습 신청 계획은 없었지만, 일단 요즘 아이들이 어떻게 학습하는지는 확인을 하고 싶어 무료 체험을 신청했다.


얼마 후 집으로 파란 커버가 덮인 탭이 도착했고
아이는 탭과의 첫 만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체험 기간 동안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 저 학습부터 할게요!”
하며 탭을 펼치기 바빴다.
동생과 나란히 앉아 재미난 만화영화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학습을 했다. 두 과목의 짧은 학습이 끝나면 아이는 탭에 내장되어 있는 다양한 ‘학습 게임’을 하고 싶어 했다.
아이는 매일매일 게임을 위해 학습에 열심을 냈다.
그리고 곁에 있는 동생도 덩달아 “나도 한 번만”을 외치며 목을 빼고 형의 학습+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또 어떤 날은 둘째 아이가 하원을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탭에 있는 게임을 하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래 봐야 칠교 게임이었지만, 그 역시 게임은 게임이었다.


아이의 학습 체험을 지켜보며
체험 기간이 끝나는 즉시 탭을 반납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아이는 체험학습을 하던 첫날
잠자리에 누워 소곤거리며 말했다.
“엄마 저는 마음을 결정했어요. 저는 학습을 계속할래요!”......


공부하겠다는(?) 아이를 말리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가 공부보다는 탭의 신비로움에 마음이 빼앗겼다는 것을 알기에 탭은 반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스마트 탭과의 이별을 이틀 정도 앞에 두고
아이에게 탭과의 이별 소식을 알렸다.

아이는 눈물부터 터뜨렸다.
“ㅇㅇ이도 하고, ㅇㅇ이도 하는데 왜 저는 안되는 거예요?
저도 이거 하고 싶어요......”
아이는 정말로 슬퍼했다.
그런 아이를 보니 나도 정말 슬펐다.
그럼에도 슬픔은 마음 깊은 곳에 감춰두고
아이를 토닥이며 진심으로 위로했다.
“우리는 아직 스마트 탭이 필요하지 않아. 이삭이 학교에서도 종이로 공부하잖아. 우리도 우선은 종이로 공부를 좀 해보자. 이것 말고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재미있는 방법이 많이 있어.”
아이는 그날 저녁나절 한참을 슬퍼했지만,
다음날이 되자 스마트 학습과의 이별은 잊고
또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나섰다.


마음 쓰린 이별을 그렇게 또 한 고비 넘겼다.
아이는 이별을 털고 다시 생활을 되찾았다.


아이의 이별은 늘 애잔했다.
어쩔 수 없이 소유욕을 짓누르며 이별을 할 때마다
눈물, 콧물을 쏙 빼놓았지만,
결국은 아이 스스로 매 순간의 이별을 차분히 받아들였다.


그 어떤 것과도 이별이 어려운 첫째 아이를 보며,
늘 마음이 쓰라렸다.
아이의 이별을 바라보는 일은
나의 소소한 이별보다 더 힘겹게 느껴졌다.
탯줄로 묶였던 마음의 연결고리가 어찌나 단단한지
아이의 슬픔이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오롯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달래고 어르며
달콤한 대안을 찾아주는 일보다는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여전히 손에 쥐고 내려놓는 것을 싫어하며
이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이지만,
하나씩 손에서 놓고
포기하고 양보해야 하는 것들을 잘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아이의 그 마음과 내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잘 헤어지고,
잘 내려놓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특별히
아이들이 대한 기대를 조금 더 편안하게 낮추고,
아이들이 자신의 못마땅한 습관들과

이별하는 일에 대해서
너무 닦달하지 않고 기다리며 응원하기로 했다.


고마운 내 아이들 덕분에
멋진 이별법을 배우고
오늘도 한층 더 엄마다워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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