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좀 까칠했죠?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by 다니엘라


남편과의 8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 한지 벌써 8년이나 된 걸까?
나의 육체와 정신만큼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의 가정을 비롯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8년 전과는 깜짝 놀랄 만큼 달라져 있다.


일단 둘에서 넷이 되어있다.
8년 전에는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두 꼬마가
이제는 각자의 존재감을 뿜뿜 거리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한몫씩 단단히 해내고 있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다.


서울남자인 남편은 ‘울산 라이프’에 잘 적응하고 있다.
식당에서 현지인 인척 사투리를 섞은 말투로 음식 주문을 하곤 하지만, 내가 듣기엔 영락없는 서울 아저씨다.
그럼에도 연고가 없던 울산으로 건너와 사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보다는
‘외국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을 누리며
울산 라이프를 잘 엮어내고 있다.


살림이 늘었다.
주로 실용적인 삶을 추구하던 나는 결혼 전 자취를 할 때에도 살림이랄 것이 별로 없었다. 옷가지를 제외하면 노트북과 작은 과도하나, 국그릇 밥그릇 한 세트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온갖 엄마스러운 살림이 넘친다.
인덕션도 두 개나 되고, 도마도 크기별로 두 개, 게다가 그릇은 양가에서 받은 것들로 주방 상부장이 미어질 정도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게다가 신혼 가전의 기본인 냉장고 티브이, 세탁기는 물론이고, 건조기에 로봇 청소기까지...
살림을 하는 집의 냄새를 솔솔 풍기며 살아가는 중이다.


마주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여가시간이 생기면 대학 친구들인 ‘싸이코노멀(우리끼리 우리 그룹을 부르던 이름)’ 친구들을 만나거나, 직장 동료, 혹은 교회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을 만나 꿈을 이야기했고,
때론 밥벌이의 고됨에 대해 논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로 큰아이 친구의 엄마를 만나거나 교회에서 친한 분들을 만나곤 한다.
여전히 꿈을 이야기 하지만,
거기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지금은 내 이야기보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될 때가 많다.


가만히 적고 보니,
내 주변만큼이나 나도 많이 달라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생각의 중심축이 나 하나에서 아이들과 남편에게로 조금씩 기울어졌다. 내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로 관심이 옮겨갔다.
나와 남편에게 참 미안해지는 대목인데,
나->남편-> 아이들의 순으로 관심이 쭉쭉 옮겨갔다.
그리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몸은,
전과 비교해 특별히 체중이 불었거나 떨어지진 않았지만
‘탄력’이라는 젊은은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몸속을 들여다보면 내부의 기능들도 저하되고, 열심히 닳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심은 조금 더 넓어진 게 아닐까 작은 기대도 해 본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에게는 너그러움을 줄여가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아이들을 키우는데 대부분의 관심을 쏟다 보니, 정작 남편에게는 크게 마음을 쏟지 못했던 것 같다.
육아 센스가 장착되지 않아 굼뜬 남편을 보면 뾰족하게 굴기 바빴다. 친절하게 알려주기보다는 ‘왜 아직도 그걸 못하고 있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남편에게서 점점 친절함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친정 아빠의 휴대전화의 주소록에 ‘밤톨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아빠와 함께 잠시 외출을 했는데, 밤톨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름도 없이 밤톨이라니,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 치고는 좀 거시기했다.

전화기 사이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엄마였다.
친정아빠는 엄마가 하~~ 도 까칠해서 밤송이라는 별명을 붙였단다.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마음 한켠엔 걱정스러움이 살살 들어찼다.
혹시 우리 남편도 나를.....?


남편의 휴대전화를 들췄지만,
나는 연애시절 그대로
‘ㅇㅇㅇ 여신님’으로 저장이 되어 있었다.
‘휴우~ 다행이다!’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쉬이 바뀔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칠십 노인이 다 되어 남편에게 밤톨이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민 보스가 쉽게 동글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결혼 8주년을 맞이하여 올해는 좀 더 남편을 섬기는 분위기로 가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을 먹는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자기 성찰이 되어버렸다. 휴ㅡ 이 도돌이표 같은 글쓰기란!ㅎㅎ)


우리들의 결혼 8주년!
오늘은 꼭
소중한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담은’
손편지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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