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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뽑기의 유혹 앞에서.

by 다니엘라

유혹을 마주하다.


우리 집 작은 꼬마가 뽑기 기계를 발견했다.
그리고 바닥에 두 다리로 징박는 소리.
탁! 탁!
결연한 표정에 마음을 눌러 담아 엄마를 바라본다.
‘이거 하나 뽑기 전엔 움직이지 않겠어요!!’



넘쳐나는 유혹거리들.

우리 집 아이들의 놀이와 놀잇감에도 유행이 있다.
유행을 주도하는 트렌드 세터는 주로 형님 쪽.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건 아우 쪽.

최근 1-2년 우리 집에서
유행을 스친 아이템들을 간단히 소개해 보면,
공룡메카드 장난감, 요괴메카드 피규어,
브롤스타즈 열쇠고리 딱지,
브롤스타즈 고무 딱지, 어몽어스 열쇠고리 딱지,
포켓몬스터 카드, 포켓몬스터 피규어..
정도가 되겠다.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하면
엄마 된 나는
주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앞세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꼬꼬마들에게는
‘되게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
가장 소중한 아이템들 이기에
시기별로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쪽을 택했다.

요즘 우리 집에선
포켓몬스터 피규어 뽑기가 최신 유행 중이다.
모아둔 피규어는 저녁 목욕시간에 빛을 발하는데,
두 형제가 한 시간씩 욕조에서 버티며 가지고 노는 최고의 장난감이기에 지금은 백번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얼마 전 여행에서 만난 뽑기 기계.
아이의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또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오늘의 글감’으로 선정한다.
뽑기를 해주는 마음 넉넉한 사람은 아빠 쪽이고,
엄마는 “하나씩만 해~.”하며 찬물을 끼얹는 쪽.




유혹 앞에서는, 엄마도 그랬어.


뽑기 기계 앞에만 서면,
그리고 문구점에만 가면 정신을 못 차리는 두 아들을 보며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두둥실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주기적으로 받는 뚜렷한 용돈이랄 것은 없었다.
엄마에게 요청을 해서 받아내거나,
우리를 향한 엄마의 애틋함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한 번씩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씩이 하사 되곤 했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하굣길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땀이 잔뜩 차 오를 때까지
손에 쥐어들고 학교 앞 문구점 투어를 한다.

학교 앞에는 문구점이 세 개 있었는데,
학교 후문에서 가장 가까운 문방구는 어둡고 늘 공기 중엔 흙냄새가 떠다니는 곳이었다. 그 흙냄새가 실제로는 곰팡이 냄새였는데, 그 당시 나는 곰팡이 냄새가 어떤 건지 잘 모르던 때라 그냥 흙냄새라고 생각하며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작은 규모에 비해 뽑기 기계가 알차게 구비되어 있었고, 진귀한 불량식품들이 특화된 곳이었다. 한 번은 거기서 꾀돌이 과자와 밭두렁 과자를 사서 섞어 먹었다가 크게 배탈이 난 적도 있었다. 진귀한 간식은 많았지만 제품의 유통기한 관리는 철저하지 않은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후문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문방구는 셋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여자 사장님은 늘 커다란 알루미늄 솥을 국자로 휘휘 저으며 아이들에게 애매한 주황색 빛이 도는 떡볶이를 종이컵에 담아 주었다.
하얀색 두꺼비를 떠 오르게 하는 크고 부드러운 아주머니의 풍채에 걸맞지 않게 눈빛은 강한 독수리와 같았다.
혹여나 유혹에 이끌려 작은 물건들을 말없이 주머니로 끌어다 넣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아주머니의 눈은 늘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나 역시 빈손을 팔랑거리며 물건을 고르고 있으면서도
괜히 아주머니의 시선을 의식하곤 했다.
혹시나 의심이라도 받을까 봐,
당당하고 싶은 마음에 그 문구점에선 손을 절대로 주머니에 넣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은 늘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넘치는 곳이었다. 불량식품은 체계적으로 상자마다 정리되어 있었고,
빨간 돼지 저금통을 비롯한 팬시용품들은
문구점의 벽면과 천장에 포도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엄마에게 받은 오백 원은
하루치의 욕망을 다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고르고 골라 3백 원어치의 간식을 담아서 나왔다.
종이 뽑기도 한판 하고 싶고, 떡볶이도 한 컵 먹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한 주간의 즐거움이
일순간 다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 다음의 어느 날을 위해
꾹꾹 눌러 아껴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구점에서 외상 서비스가 시작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돈은 없지만 급하게 무언가를 사야 할 때 사용하는 서비스로 이해를 했다.
그리고 외상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문구점에 들렀다.
너무 떨려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밭두렁과 꾀돌이, 아폴로, 그리고 컵 떡볶이 한 컵까지 골라
외상으로 구매를 했다.
내 신용점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름과 학년, 학반을 기재하니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다.
신세계!

외상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다음 날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2-3일을 지독하게 앓았다.
그러는 사이 우리 엄마의 귀에 내가 외상을 했다는 소식이 흘러들어 갔다.
친구 엄마를 통해 문구점 앞에 외상값을 갚지 않은 친구들 명단에서 내 이름을 봤다는 제보를 받게 된다.
아픈 나는 자리에 꼼짝없이 누워서
엄마에게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다.
그때 엄마의 무시무시한 신용강화 훈련 때문이었는지
나는 결혼 전까지 신용카드 조차 만들지 않고
있는 대로 아끼며, 써 가며 살았다.

그 당시 겁도 많았던 내가
어째서 외상까지 하며 간식을 사 먹었을까 생각해보니,
매일매일 마주했던 유혹을
스스로는 쉽게 뿌리치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불량식품이 몸에 좋지 않으니
"안된다. 먹지 마라."하고 말씀하시니 별 수 없었다.
외상이라도 해서 주기적으로 오묘하게 달고 짰던 간식들의 맛을 보고 싶었다.
불량식품과의 소통을 막으면 막을수록 더 먹고 싶어 졌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불량식품의 유혹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미션이었다.




유혹, 무조건 막아서지는 않을게.


어릴 적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아,
유혹 앞에선 아이들에게 무조건
"안돼! 안돼!"를 외치지는 않기로 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온전히 막아서야 할 때도 있음을 안다.)
아이들의 마음에서 유혹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
뻥 터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느 정도의 허용 가운데서
절제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아이의 인생에 크게 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즐거운 경험도 함께 하고
때론 함께 넘어지기도 하며 함께 성장하기로
다시금 마음을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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