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유아용 풀장에 뛰어들어간 엄마

by 다니엘라

아이가 유아용 풀장으로 헤엄치러 들어간다.
제 나이에 맞는 풀장이다.
함께 들어간 친구들이
자유자재로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도 풀장에 들어서서
신나게 헤엄치려던 참이다.
갑자기 아이의 표정이 굳는다.
물의 온도에 놀란 건지,
물의 깊이에 놀란 건지,
친구들이 차 올려 튄 물이
과거 어느 때를 떠오르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멈춰 서 있다.

잔뜩 불안해진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엄마 도와주세요. 불안해요.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엄마는 단 일초의 고민도 없이
유아용 풀장으로 첨벙! 뛰어든다.
아이를 두 손으로 받치며 응원한다.
“괜찮아.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아이를 물 위로 띄우는 데 성공한다.

엄마의 손길에 용기를 얻은 아이는
웃으며 물가의 친구들에게로 돌아간다.
엄마는 애써 걱정을 감추며
유아용 풀장을 뒤돌아 나온다.

아이는 한 동안 즐겁게 헤엄을 친다.
그러나 또 다른 불안 요소를 발견하는 순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눈으로 엄마부터 찾기 시작한다.

엄마가 유아용 풀장에 뛰어들어가서는 안되었다.
아이에게 키판을 건네주거나,
아이가 스스로 물밖으로 나와
잠시 심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했다.
그저, 첨벙 뛰어든 것으로
엄마의 도리를 다 했다고만 생각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엄마는
아이의 불안한 눈빛에도 허둥대지 않고
아이가 스스로 극복해 낼 수 있도록
기다리기 시작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아이의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______


나와 내 아이의 ‘따끈따끈한’ 요즘 이야기다.
(예민한지 몰랐던) 예민한 나와
(예민한지 더 몰랐던) 예민한 내 아이의 이야기다.


2학년 입학을 한 지 3주가 넘어서는 시점,
즐겁게 등교하던 아이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엄마, 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요?”

코로나 때문인지 덕분인지,
혹은 우리 아이의 예민함 때문인지
아이가 2학년이 되어서야 부적응의 문제를 드러냈다.


첫 아이의
처음 겪는 ‘부적응’이라는 어려움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랐다.
아이보다 내가 더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모든 일의 기본은 원인을 살피는 일이라,
우선은 아이가 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지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1학년 때와 비교해서 엄격하신
남자 담임선생님을 무서워했다.
그리고 오전 독서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져서
불안하다고 했다.
수업시간도 너무 길고,
쉬는 시간도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쉬는 시간이라서
계속 끝이 나지 않아 엄마를 못 만나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일시적인 것이길 바라며,
첫째 날은 어영부영 아이를 달래서 학교에 보냈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학교에 가기 전날
아이는 또다시 등교거부를 했다.
간단한 상황이 아님을 인지하게 된다.


아이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주고
달래서 학교에 보냈다.
아이는 선생님과 상담을 꼭 해달라는 부탁을 하며
학교로 향했다.


그날 아이를 등교시키는데,
놀랄 만큼의 우연의 일치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 교문 지도를 하고 계셨다.


담임선생님의 출장 문제로
전화 상담이 미루어졌던 터라
이때가 기회일 수 있다 싶어서
선생님과 짤막한 상담을 했다.
선생님의
“아이들이 적응하는 기간이라 다들 비슷합니다.”
하시는 말씀과,
나의
“네 어려우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아이는 그 날 이후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불안했던 눈빛이 사라지고,
장난꾸러기 내 아이의 눈빛이 돌아와 있었다.


그걸로 문제가 다 해결된 줄만 알았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는 분의 소개로
아이의 문제에 관해 상담을 받게 된다.


상담 선생님은,
현재는 엄마의 과잉반응이 문제라고 하셨다.
아이가 겪는 부적응 문제에 대해
엄마가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으며,
아이가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양육방식에 관해서도 상담을 해 주시고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제공해 주셨다.
그리고 현 상황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을 테니
또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새롭게 맞이한 월요일 아침,
아이는 다시금 등교 거부를 했다.
(솔직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겼다.
담담히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고,
동요하지 않으려 마음을 부여잡았다.


아이는 애써 이유를 찾아냈다.
“독서시간이 너무 길어서 무서워요.”
정말로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침착하게.
“그러면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
아이와의 고민 끝에
학교에 가져가는 책을,
한 권은 동화책,
그리고 또 한 권은 재미난 학습만화책으로 결정했다.


아이는 두려움을 떨치고 학교로 향했다.
이 모든 상황은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아이에게 너무 공감하지 않았다.
아이 앞에서 불안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도 잠잠히 받아들이고 등교를 했고,
감사하게도
여느 때와 같이 방글거리며 하교를 했다.


아이의 부적응 문제는 진행형이다.
다만, 처음의 불안함은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르겠고 어려웠다면,
이제는 조금은 알겠고,
어려워도 문제를 풀어나가보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편이다.
표정의 변화, 행동의 변화, 목소리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문제 상황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가볍게 넘겨도 될 문제까지
심각하게 파고드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곤란하기도 하다.


아이가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아이가 아파하면 아파하는 대로,
아이를 향한 공감을 뛰어넘어
엄마의 마음이 아이의 마음으로
완전히 물들어버리는 경우도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불안함은
또다시 아이에게 전달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풀장에 엄마가
덜컥 들어서지 않는 것이 좋다.
지켜보고 기다리며,
아이가 다시 헤엄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의 부적응 문제는 진행형이다.
어제는 괜찮지 않았어도
또 다른 며칠간은 괜찮기도 하다.
그리고 또다시 긴장을 품기도 한다.


일희일비 하지 않기로 한다.
아이의 부적응 문제를
아이의 인생에 처음으로 주어진
중요한 미션으로 여기고,
아이의 주도하에
아이와 함께 풀어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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