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서
무거운 감정의 응어리를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큰아이를
토닥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엄마 내일은 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요?”
“왜 학교에 안 가고 싶어?”
“선생님이 활동을 너무 늦게 끝내셔서, 엄마를 못 만날 것 같아서 불안해요. 쉬는 시간 종이 울려도 책을 더 공부하고, 점심시간에도 밥 먹으러 늦게 가고,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더 많이 쉬는 시간이고 그래요. 그래서 엄마를 못 만나게 될까 봐 불안해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 만 1년 만에 있는 일이다.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이 공부할 때 너무 웃기게 가르쳐 주셔서 좋은 것 같다고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학교에서 활동으로 나비를 만들었는데 그게 너무 예쁘고 멋지다는 말도 했다. 또 어떤 날은 학교 도서관에 가는 게 정말 재미있다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어젯밤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
1학년 때는 학교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1학년 2반으로 등교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었다.
학교가 얼마나 재밌고 좋은 곳인지 동생을 앉혀놓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그랬던 아이가 2학년이 되고
등교한 지 3주 만에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이나 수업 시간 종이 울려도
그때에 맞추어 정확하게 무언가를 시작하시지 않는 모양이다. 선생님만의 종이 따로 있는 듯했다.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수업을 계속한다거나, 쉬는 시간이 되었는데도 수업을 시작하지 않고 조금 늦게 시작하는 듯했다. 점심시간에도 느지막이, 모든 것이 정시에 시작되지 않는 것에서 아이는 영원히 안 끝날 것 같다고, 그래서 집에도 못 가고 엄마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것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는 2학년이 되어 너무나도 달라진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자 선생님만큼이나 살갑지 못한 남자 담임 선생님과의 생활이 조금 어려운 모양이다.
우선은 아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기억나는 무서운 선생님들 이야기를 몇 건 들려주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복도에서 벌서다가 오줌을 쌌던 이야기까지 해 주었지만, 아이는 크게 위로받지 못한 것 같았다.
내 2학년 때의 일들이 기억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얼굴만 떠오를 뿐
힘들었거나 좋았던 일들이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의 그 시절엔 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지냈던가,
어떤 마음을 겪었던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에 필요한 위로나
격려를 보탤만한 사례가 없었고, 그게 너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지금의 이야기라도 했다.
“아빠도 회사에 가면 너무 힘들어서 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는데, 그래도 꾹 참고 가시는 거래.
왜냐하면 아빠가 회사에 가셔야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이삭이랑 요한이 간식도 사주시고 선물도 사 주실 수 있거든, 그리고 그 돈으로 우리가 맛있는 것도 먹고...
아빠가 일할 때 즐겁기도 하시지만, 분명 어려우실 때도 있어. 엄마도 그래. 엄마도 출근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만, 엄마가 맡은 일이라서 해내는 거야.
그러니까, 이삭이도 힘을 조금 더 내보자.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 이삭이를 위해서 기도하자.”
아이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주일 동안 이 일을 위해서
엄마가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아이를 꼭 안고 기도해 주었다.
아이가 혹여나 눈물을 닦다 잠이 들까 봐
아이가 좋아하는 ‘쌍 바윗골의 비명’ 이야기로
아이가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진 뒤에
잠이 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이는 조금 뒤척이다가
이내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 나와 성경필사도 하려고 했고,
책도 읽으려고 했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이상 거실까지 걸어 나갈 힘이 나지 않았다. 아니, 힘 보다도 그럴 마음이 솟아나지 않았다.
밤이 되면 어른들도 감성적으로 변하고,
힘들거나 슬픈 일은 더 힘들고 슬프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삭이도 몸이 자라는 만큼 감정이 자라는 모양이다.
힘든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늦은 밤 감성 요정이 찾아와
아이의 눈물샘을 더 깊이 자극했을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분명 아이는 그간 힘이 들었던 게 분명하다.
우선은 아이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기로 한다.
격려의 말들을 아끼지 말고,
아이가 더 씩씩한 마음을 가지도록
바깥활동의 기회도 더 자주 갖고,
아이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도
미루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는
담임선생님과의 전화상담에서
지혜롭게 이야기를 잘 풀어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부디 아이가 아침에는 해맑은 웃음을 장착하고 일어나
“그만 좀 뛰어~!” 하는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씩씩한 아침을 보냈으면 좋겠다.
ㅡ
그나저나 아이가 힘들어하니,
내 마음이 와이리 아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