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니엘라 Apr 07. 2021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 세계사


글 쓰는 이들이 풍년인 시대를 살고 있다.
써보기 전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상이다.
글을 쓰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그리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글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써 보기 전엔 전혀 알지 못했다.


글쓰기를 단순히 즐기거나,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은
이 시대의 소통의 창구인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의 글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글을 찬찬히 쫓아 읽다 보면
대다수의 글 생활자들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글감이 찾아지지 않아서 고민이고,
아무리 쥐어짜도 글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이고,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쓴 글인데
자꾸만 일기가 되어버려서 속상한 일쯤은
넘치는 글만큼이나
많은 글생활자들이 겪는 고충이다.


(본인 포함) 이런 고민 많은 이들을 위해
기존 작가들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혹은 ‘글 쓰는 (비)법을 담은’ 책들을
부지런히 써내고 있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글쓰기에 관한 책’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도 했고,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에 관해서는
‘심히’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중
글 생활자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만한 책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글쓰기 비법 같은 건 당연히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작가의 글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그리고 정말로 배우고 싶은
작가의 보석 같은 표현들이 도처에 숨겨진
진실된 글 모음집이다.


‘대작가’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박완서의
에세이 모음집인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고 박완서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을 기념하여
그녀의 660여 편의 수필 중 베스트 35편을 선별해
엮어낸 책이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는 내내,
치열하게 살아냈지만
따뜻함을 마음 깊이 지닌 작가의
따뜻한 글들을 마주할 수 있는 풍요의 시간이었다.


책 속에 빼곡히 담긴 수많은 글들 중
마음에 잔잔히 남은 구간의 몇 구절을 남기는 것으로
서평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응모 마감까지는 3개월 남짓 남아 있었다. 나는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십에 처음 해보는 이 일에 대해 가족들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탔다. 그래서 철저하게 몰래 하기로 작정했다. 가족들 몰래 그 일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지만, 나는 평생 나만의 일을 가졌다는 것과, 가족들에게 비밀을 가졌다는 것으로 매일매일 아슬아슬하리만큼 긴장했고, 행복했고, 그리고 고단했다.
 p.209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거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p.216


그래도 나는 별로 낮에 글을 써보지 못했다.
밤에 몰래 도둑질하듯, 맛난 것을 아껴 가며 핥듯이 그렇게 조금씩 글쓰기를 즐겨 왔다.

......
쓰는 일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읽히는 것 또한 부끄럽다.
나는 내 소설을 읽었다는 분을 혹 만나면 부끄럽다 못해 그 사람이 싫어지기까지 한다.
p.218


서재에서 당당히 글을 쓰는 나는 정말 꼴불견일 것 같다.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쟤도 안 바꿀 것 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220



읽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당신에게,
쓰고 싶은 열망이 봄꽃처럼 그득한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소설, 수필, 동화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 생활을 향유한 진짜 글생활자의
애정 담긴 에세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작가의 이전글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