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오늘도 다이어트 중이다.
일단 뭐든 시작만 했다 치면 열심인 남편이다.
'열심'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남편은
펄떡대는 열심보다는
꾸준한 열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매일 새벽에 하는 중국어 공부도 10년을 넘게 이어왔고,
매일 점심 운동도 거르지 않고 해내며,
지난해에는 리얼 클래스 1년 완주도 마칠 정도로
꾸준함 하나는 일등인 남편이다.
그런 남편이 다이어트를 '또'다시 시작했다.
몇 주째 꾸준히 식단을 지키고 있다.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와 사과 한두 쪽에
때론 두유 한잔과 구운 계란도 곁들인다.
점심은 로켓 배송으로 주문한 완제품 샐러드를
도시락으로 챙겨 가서 해결한다.
저녁은 현미밥을 기본으로 일반식을 먹는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이 먹는 식단을 사진으로 찍어서
매 끼니마다 다이어트 인증 프로그램에 인증을 한다.
빠짐없이 기록하고,
다이어트 식단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주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벽에 가까운 다이어트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함께 살아온 8년간의 다이어트를 모두 모아 보면,
그리고 그때마다 성공했다면,
남편은 지금쯤
근육 짱짱맨이 되어 있거나
꼬챙이같이 깡마른 사람이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아마도?) 변함없지만,
그의 몸매 역시 단 한 가닥의 변화도 없다.
정말이다.
물론 중간에 잠시 5킬로 그램쯤의 체중을
감소시킨 적은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인간미 있는 몸매로 다시 돌아와 주었다.
남편은 왜 수년간 다이어트를 지속해야 했을까?
과학 실험 과제를 풀어내듯이
남편을 오랫동안 관찰해 보았다.
결론은,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였다.
남편은 다이어트식을 지향했고,
꼬박꼬박 지켜 먹었지만,
섭취량은 다이어터의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식간에 속이 허전할 때면
몸의 곳곳에 좋다는
양질의 호두와 병아리콩, 그리고 검정콩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공복을 건강하게 채운다며
두유 한팩은 거뜬히 삼켰고,
견과류는 하루 한 줌이 아니라
한입에 한 줌, 하루에 여러 번을 섭취했다.
가끔은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에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으며
아껴둔 생라면을 아그작거리며 해치우기도 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려 했겠지만,
쓰레기통만 살짝 들여다봐도
나는 그가 지난밤에 한 일을 모두 알게 된다.
다이어트 식단을 챙겨 따로 구매하고,
그의 스페샬한 간식류까지 챙기다 보면
만만찮은 비용이 투입된다.
게다가 그가 인증하는
다이어트 습관(?) 프로그램마저도 유료 서비스이다.
쓰다 보니 기승전 머니....ㅎ
꼭 돈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각하면 할수록 본전 생각ㅋ)
이왕 돈 들이고 하는 거라면
제대로 한 두 시즌만에 끝내주면 좋으련만
여유만만 남편은 만년 다이어터로 활동 중이다.
오늘도 아이의 숙제를 돌보는 틈을 타
남편은 열심히 샐러드며 다이어트 식단을 주문 중이다.
수년 동안 다이어트를 하며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남편에게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년간 살을 빼지도 못했지만,
더 찌우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사고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본다.
수년간 꾸준히 다이어트를 이어 온 남편은
원래의 체중보다 살을 더 찌우지 않았다.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 만한 일인데
늘 반대쪽 방향만을 바라봐왔다.
그가 이루어내지 못한 것에만 집중을 해 왔던 탓에
응원의 말 한마디 전하지 않은
작디작은 나의 모습이 동동 떠오른다.
어쩌면 그에게 부족한 것은 의지력이 아니라
따뜻한 응원과 격려 인지도 모르겠다.
다이어트를 포기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애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남편은 오늘도 여전히 다이어트 중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이어트 식단을 그 어떤 음식보다
복스럽고 맛있게 먹는 남편이
문득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지도 모르는
남편의 귀여운 다이어트를,
그리고 만년 다이어터인 남편을
사랑을 담아 온전히 지지해보기로 마음을 굳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