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샤워를 하며-
출근 복장을 머릿속에 그리며
신발까지 딱 매칭해 놓았다.
만족스러운 샤워였다.
더없이 말끔한 몸과
말끔한 기분이었다.
완벽한 아침이라 생각했다.
정말이다.
진짜다.
아이들에게도
두 번쯤 밖에 소리를 지르지 않은,
부드러운 아침이었다.
그러곤-
출근한 지 세 시간이나 지나,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신발을 완전히 잘못 신고 나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언매칭 오브 더 언매칭)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지기 시작한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이도 나 자신이지만,
나를 위로하는 이도 오직 나하나뿐이다.
위로에는 글 만한 게 없지.
오늘 같은 날은
자작시 한편 뽑혀 나오는 날이다. (얼쑤!)
신발 한 켤레 잘못 신고 나와서
자작시 쓰는 여자의,
자작자작한 자작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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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간밤에 빈 밥솥을 보며
새 밥을 지어놓고 자기로 결심하지만,
아침이 되어 텅 빈 밥솥을 마주하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시리얼 먹고 가라. 호랑이 기운 생긴단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우리 꼬마들 시원한 물 마시며
늦봄의 더위 이기라고 물병을 착착 준비하지만,
아이들을 보내고 보니
싱크대에 그대로 남겨진 물병을 보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아들아, 미안하다. 이건 그냥 무조건 미안하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깨끗한 정장 차려입고,
색깔도 디자인도 따로 노는
두꺼비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맨발로 출근 안 한 게 어디예요~호호”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사무실 도착하자마자 화장할 각오로
가방 속의 화장품만 철석같이 믿지만,
사무실에 도착해보니 ‘어 안 가져왔네?’
하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동료 여러분, 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저녁에 먹으려고 해동해 놓은 가자미를 잊고
굳이 냉동실에 있던 꽁꽁 언 불고기를 꺼내
이두박근 불끈대며 고기를 썰어서
구워 먹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존재감 없는 가자미가 잘못했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잘 자라는 말을 다섯 번쯤 하고,
굿나잇 볼 뽀뽀를 일곱 번 정도 하고 나서도
“아 맞다. 굿나잇 뽀뽀해줄게.” 하는 것.
깜-빡, 깜빡-, 깜빡깜빡.
“훈훈하게 마무리합시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완벽한 하루 일거라 굳게 믿은 날마저도
구멍이 숭숭 뚫린
엉뚱한 날로 마감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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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실수투성이에
분주하기 짝이 없는
정신없는 엄마로 살고 있지만,
‘사랑’ 하나는 기똥차게 흘러넘치는 타입.
내가 바로 현실 엄마다. ^^
photo by Chantelle Fritz @Pinterest